9월13일 시행되는 개정 형법은 제98조의2를 신설해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한 간첩행위까지 처벌 대상에 넣었다. 사진은 훈련에 참가한 한미 공군 전투기들이 지난 7월 훈련 공역으로 이동하는 모습. 왼쪽부터 미 공군 F-16 2대, 한 공군 F-16 2대. /사진=공군


# 한미 공군 전투기가 뜨고 내리는 군산공항에서 약 1㎞ 떨어진 호텔. 객실 책상 위에는 주파수 대역을 탐지하는 신호정보수신기(SDR)와 고성능 안테나,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 60대 남성이 전투기 조종사와 관제사 간 교신을 불법 청취·녹음한 장비였다. 그는 2024년 이후 한미 공군 훈련 시기와 맞물려 여러 차례 한국에 입국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 7일 이 남성을 검거해 10일 구속했다. 그러나 경찰이 그에게 적용한 혐의는 간첩죄가 아니라 일반이적죄와 통신비밀보호법,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이었다. 현행 형법상 간첩죄가 북한과 같은 '적국'을 위한 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도 한국군 장교에게서 군사기밀을 넘겨받아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전달했지만 일본이 적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간첩죄 대신 군사기밀보호법으로 처벌됐다.

73년 만에 '적국' 벽 허문 간첩죄


그래픽은 형법 제98조 간첩죄 개정 전·후 비교.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오는 9월13일 시행되는 개정 형법은 제98조의2를 신설해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한 간첩행위까지 처벌 대상으로 넓혔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73년 만의 변화다. 그러나 이번에 잡힌 군산 사건 피의자가 개정법 시행 이후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간첩죄로 처벌될지는 미지수다. '외국의 지령·사주'를 수사기관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령·사주가 실제로 있었더라도 이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스파이 특성상 직접적인 지령 문서가 남는 경우는 드물다. 만약 중간 전달책, 암호화 통신 등을 거쳤다면 외국과의 연계성을 밝혀내기 위한 장기간 통신·계좌 추적 등의 부담을 수사기관이 져야 한다.



사진은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8차 본회의에서 형법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적296인, 재석 170인, 찬성163인, 반대 3인 기권 4인으로 가결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따라서 개정 형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수사기관이 외국과의 연계성을 입증할 역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2024년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된 뒤 정보 수집은 국정원, 수사는 경찰이 담당하는 구조로 나뉘면서 간첩 수사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안통 출신 전직 검사장은 "지령을 밝혀내려면 장기간 감청과 미행 등이 필요해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며 "이를 실제 사건으로 입증해낼 수사체계와 역량이 뒷받침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지령·사주 입증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외국과의 연계가 상당한 개연성이나 정황으로 확인되는 경우까지 포섭할 수 있도록 단서 조항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기준이 불명확해지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다"며 외교적 마찰과 중국 내 한국인 활동에 대한 상응 조치를 우려했다.

"국가기밀 범위 넓게 해석해야"


사진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6'이 개막한 지난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호텔에 마련된 SK하이닉스 전시관에서 '프레스투어' 참석자가 'HBM4 48G 16Hi'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개정 형법이 시행되면 반도체 등 국가안보와 관련된 핵심 산업기술 유출에도 간첩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개정법은 보호 대상을 군사상 기밀에서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기밀'로 넓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까지 '국가기밀'로 간주할지는 앞으로 판례를 통해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을 지낸 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경제스파이 행위에 대응하려는 취지를 감안하면 국가기밀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개정 형법상 간첩죄는 산업기술보호법이 포섭하지 못하는 데이터나 중요 기밀사항까지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기술 유출에는 주로 산업기술보호법이 적용된다.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면 3년 이상의 징역과 6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형법상 간첩죄도 법정형 하한은 3년 이상이지만 실제 양형에서는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1심 사건 33건 중 60.6%가 무죄, 27.2%가 집행유예였고 유기징역형은 2건(6.1%)에 그쳤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핵심기술 유출은 단순한 경제범죄가 아니라 국가안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행위"라며 "경제사범으로 처벌받는 것과 간첩죄로 처벌받는 것은 죄의 성격과 사회적 의미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래픽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1심 선고 현황. /그래픽=신재민 편집위


국내 첨단기술을 탈취하려는 중국 측의 시도는 전방위적이다. 핵심 기술자에게 기존 연봉의 수배를 제시해 이직을 유도하거나 협력업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기술에 접근하기도 한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에서 고위직을 지낸 니컬러스 에프티미아데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이를 '전사회적 접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중국의 정보활동은 정보기관뿐 아니라 국유기업과 민간기업, 개인, 공산당 조직까지 다양한 주체를 활용한다"며 "분석한 경제스파이 사건의 절반 이상에는 민간기업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기업은 겉으로 민간기업처럼 보여도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의 반도체와 첨단기술 역시 적극적인 정보 수집 대상"이라고 했다.

선진국에서는 핵심기술 탈취를 국가안보상 범죄로 다룬다. 미국은 경제스파이법(EEA)을 통해 외국 정부를 위한 전략기술 탈취를 중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영국 역시 2023년 국가안보법을 제정해 외국 세력과 연계된 정보·영업비밀 탈취 등을 국가안보 범죄로 규율하고 있다. 손 고문은 "외교 관계는 외교 관계이고 범죄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별개의 문제"라며 "정부의 대중국 정책 기조와는 구분해 법을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국가정보원 청사. /사진=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