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엽 미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동행미디어 시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 선임연구원은 지난 23일 [시대]에 배우 하영 증조부의 친일 논란과 관련해 '어느 독립운동가 후손의 편지'라는 글을 기고해 큰 공감을 얻었다. /사진=조현호 기자


"그거면 됐다. 너도 힘들 텐데…." 독립운동가 후손인 우정엽 미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어머니 박승련(81) 여사의 말을 빌려 지난 23일 [시대]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당시 배우 하영이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공개했다가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파헤쳐지면서 대중의 비난을 받을 때다. 역사를 덮거나 잊자는 게 아니었다. 조상의 죄를 "몰랐다"는 후손을 다그친다고 우리 분노가 풀리겠느냐는 메시지였다.

박승련 여사는 3대(代)가 국가유공자 집안이다. 박 여사의 할아버지 박제선(1878~1938) 선생은 경북 영주에서 대동상점을 운영하며 대한광복회 군자금을 모았다. 박제선 선생의 아들이자 박승련 여사의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했다. 박 여사의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손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어머니가 나물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지다. 가난한 집 둘째 딸인 박 여사는 중학생 때 집을 나와 입주 가정교사가 됐다. 이를 가는 소리가 시끄럽단 집주인의 눈치에 솜을 입에 물고 자며 버텼다. 돈을 더 벌어야 했던 그는 대학 진학 대신 여군에 입대했다. 장교가 돼 월남전에 파병되면서 자신도 국가유공자가 됐다.

"가난한데 분노할 여유 있었겠나"

-어머니 얘기를 듣고 기고를 하게 됐다는데, 어쩌다 어머니와 배우 하영 이야기를 나누게 됐나.
▶뉴스에 계속 하영 증조부 얘기가 나와서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데, 어머니가 그러더라. "애 하나 잡을 일이냐?"고. 그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가진 독립운동가 자손도 있다'고 모친 시각에서 글을 쓰게 됐다. 연예인 조상의 친일 행적에 대해 우리 집에서 심각하게 논의하고 토론한 건 아니다. 다만 어머니는 그 배우가 조상의 행적을 몰랐다고 하니 '왜 몰랐을까?' 진짜 궁금해하셨다.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증조부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욱 궁금해하신 것 같다. 친일파 후손임을 모르고 방송에서 자랑한 게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이제라도 그 배우가 조상의 과거와 당시 고초를 겪은 사람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사과했다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반응이셨다.



-모친께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어머니는 가난하게 크셨다. 어머니도, 외할머니도 분노의 에너지로 살아온 게 아니다. 사는 게 힘들고 당장 나물 팔아야 하는데 분노만 하고 있을 여유가 있었겠나. 분노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호의호식하는 친일파 후손을 보면 분노하실만도 한데….
▶식민 지배의 기억이 남아있는 분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고는 계몽하려고 쓴 것도 아니고, 배우를 욕하지 말란 것도 아니다. 내가 누구를 대표해서 그런 가치판단을 할 수 있겠나. 다만 '사람 한 명에게 분노를 표출한다고 분이 풀리겠나', 이런 생각과 논의가 더 가치 있는 논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저의 기고는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의견 중 어머니와 나의 생각일 뿐이다.

-외증조부와 조부가 독립운동가란 사실을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강조하셨나.
▶누가 '너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이렇게 얘기하겠나. 어머니는 전역 후 방송통신대에서 학위를 따고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셨다. 어릴 때 외할머니 손에서 크며 자연스럽게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된 거다.



-당시 어머니 세대가 여군 입대를 결심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국가를 위한 희생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있었을 거다. 그렇다고 국가와 민족만을 위해 당시 여성이 파병을 갔겠나. 가난했고, 몸은 성하다. 당시 한국 경제 상황을 보면, 입대를 하는 게 돈 벌기에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기고를 보면 모친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은 데 대해 "운이 좋았다"고 했다. 여전히 가난했다면 이런 포용적 메시지를 낼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평생 괴로워해야 하나.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모친은 (독립운동가의) 딸이어서 (국가 차원의) 혜택을 특별히 받은 게 없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삶을 살아가는 데 사회의 혜택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나.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회적 화해를 이뤄내는 건 개인적 상황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우정엽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25일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논란과 관련해 "사람 한 명에게 분노를 표출한다고 분이 풀리겠느냐"며 "더 가치 있는 논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조현호 기자


"역사 기억하되 韓日 관계의 전부로 만들어선 안 돼"

-사과는 포용의 조건인가.
▶사과에 진정성이 담겨있는지는 당사자만 알지 않을까. 속마음을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용서하려는 사람에게 명분은 만들어줘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계속 원망하고 분노하기엔 인생이 힘들다.

-외교부 외교전략기획관 등을 지낸 외교·안보 전문가로,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일본의 수출규제와 '노재팬' 운동처럼 과거사 갈등이 한일관계 전반으로 번지는 사태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일본이 자제하고 스스로 자정하길 바라지만 어떻게 빨리 해결되겠나. '왜 저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느냐'는 불만도 당연히 있다. 그렇다고 신사 참배했으니 유니클로를 입지 말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도쿄 신오쿠보역에선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씨를 지금도 추모한다. 추모객 중에선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한국 청년의 희생을 기리는 마음과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은 별개일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역사 문제에 대한 입장 하나로 상대의 모든 것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결국 과거사와 안보·경제·문화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이 필요하다는 건가.
▶분리하되, 역사 문제를 두고 갈등이 커지면 현실적으로 다른 분야 협력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서로 얼마나 조심하고 자제하면서 협력하느냐가 중요하다. 한일 양국 지도자 모두 절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정엽
1971년 12월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미 조지타운대에서 정책학 석사, 위스콘신주립대(밀워키)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밟았다. 2010년부터 민간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지냈다. 외교부 외교전략기획관을 거쳐 현대자동차그룹에서 글로벌정책전략실장(전무) 등으로 일했다. 최근 미국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로비의 세계를 다룬 책 '액세스'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