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친일파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드립니다.' 글쓰기 강사이자 작가인 윤석윤씨(70)는 2011년 민족문제연구소 회보에 이런 제목의 글을 실었다. 누가 요구한 사과는 아니었다. 글쓰기 강좌에서 할아버지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다 혹시나 해서 펼친 '친일인명사전'에서 할아버지 이름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그의 할아버지인 윤수병(1876~1953)은 일제강점기 때 충남·전북에서 군수를 지냈다. 친일파 후손의 사과는 당시 여러 매체에 소개됐다.
15년이 흘렀다. 최근 배우 하영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알려지면서 '후손은 조상의 잘못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느냐'는, 우리 사회가 깊이 고민해야 할 질문이 던져졌다. 스스로 친일파 후손을 임을 밝히며 사과한 윤 작가는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내가 한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는 태도는 옳지 않죠."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친일파임을 확인한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민족문제연구소에 매달 회비를 내고 있다. 그사이 달라진 게 있다면 일본인 며느리를 맞이한 일이다. "그래서 요즘 일본을 바라보는 마음이 좀 복잡하다"고 했다.
"옳고 그름이 먼저고, 이익과 손해는 그다음"
-아들이 일본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는 않았나.
▶한국 드라마 좋아해서 유학 온 친구였는데 8년 전 아들과 결혼했다. '원수의 나라'라고 반대할 수도 없고. 그전엔 일본이 밉다는 생각이 좀 있었지만 다문화 가정이 되면서 이런 감정이 누그러졌다. 일본 우익 정치인이 문제지 일본인 개개인을 미워할 순 없지 않나.
-15년 전 친일인명사전은 왜 찾아봤나.
▶할아버지가 항상 궁금했다. 군수를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집 장롱에 군수 때 차던 칼도 있었다. 혹시나 해서 친일인명사전을 찾아봤다. 솔직히 이름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역시나 올라와 있더라.
▶한국 드라마 좋아해서 유학 온 친구였는데 8년 전 아들과 결혼했다. '원수의 나라'라고 반대할 수도 없고. 그전엔 일본이 밉다는 생각이 좀 있었지만 다문화 가정이 되면서 이런 감정이 누그러졌다. 일본 우익 정치인이 문제지 일본인 개개인을 미워할 순 없지 않나.
-15년 전 친일인명사전은 왜 찾아봤나.
▶할아버지가 항상 궁금했다. 군수를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집 장롱에 군수 때 차던 칼도 있었다. 혹시나 해서 친일인명사전을 찾아봤다. 솔직히 이름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역시나 올라와 있더라.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가 한 일을 손자가 꼭 사과해야 했나.(윤 작가는 할아버지가 사망하고 4년 뒤 태어났다)
▶아버지가 잘못했으면 자식이 부끄러워하고 사죄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게 나의 윤리의식이다. 저세상이 있다면 할아버지가 '이놈은 제 할아버지 팔고 다니네' 이럴 거다.
-할아버지 덕을 본 적이 있나.
▶할아버지는 비교적 일찍 관직을 그만뒀다. 친일파 자손은 3대가 먹고 산다는데 그런 건 없었다. 산파 자격증이 있는 할머니가 병원에서 일하시며 생계를 책임졌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한국전력에 다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친일파 후손이란 사실을 공개하는 일에 가족 반대는 없었나.
▶다른 형제들은 먹고살기 바빠 관심이 없었다. 아내는 처음에 반대했다. '당신이 유명인도 아니고 이익 볼 일도 아닌데, 왜 굳이 밝혀서 타깃이 되려 하느냐'고. 그런데도 글을 기고한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나의 윤리의식 때문이었다.
-그 윤리의식이란 무엇인가.
▶정약용 선생의 '시비이해(是非利害)'라는 말을 좋아한다. 옳고 그름이 먼저고 이익과 손해는 그다음이다. 세상이 유지되는 건 옳은 일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한 독립운동가, 군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독립운동가 자손이 대부분 고졸로 어렵게 산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제 나름의 윤리의식을 갖게 됐다.

"대중 인기 얻는 연예인이면 그들의 분노 이해해야"
-배우 하영이 "4대째 의사 집안"임을 공개했다가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으로 비난받았다. 이를 어떻게 봤나.
▶하영은 '4대째 의사 가문'이라고 말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려다가 친일 논란이 불거진 거다.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면 책임을 져야 한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있지 않나. 대중들이 왜 분노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먼 후손이라도 조상의 친일 행적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물론 몇 대손인 개인에게 연좌제처럼 책임을 물을 순 없다. 이 비난을 '사회적 의미'를 확대해야 한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해산 하면서 친일파 조사가 잘 안됐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끔 국가 차원에서 역사 청산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또 (친일파) 후손이 조상의 잘못을 책임질 순 없지만, 집안의 역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 역사는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의 반일 감정을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역사의식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의식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사회에 물어야 하고 국가 차원에 물어야 한다. 친일파 후손 중에 연예인도 있겠지만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교수 등 지식인도 많다. 그 사람들 역시 책임지지 않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해야하지 않나. 지금까지 역사 청산이 제대로 안 됐고, 그것에 대해 사회가 공감하고 바로잡는 것으로 이 문제를 확장해야 오히려 개개인을 향한 연좌제가 없어진다.
-친일파 후손으로 사과하고,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도 '사회 문제'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으로 봐야 하나.
▶15년 전 기고는 원래 민족문제연구소 게시판에 비공개로 올렸다. 그해 친일파 재산환수 합헌 결정이 있었고, 연구소 측에서 사회적 환기를 위해 공개하자고 제안해 응했다. 그 후 인터뷰도 사회적으로 보탬이 된다고 하니 했다. 어떤 사회적 영향을 끼치려고 의식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다. 내가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뿐이다.
-친일파 후손으로 사과한 이후 지금까지 민족문제연구소에 회비를 낸다고 들었다.
▶모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진 않는다. 그래도 단체 활동에 동의해 계속 회비를 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뿐 아니라 아프리카·아시아의 아동 교육을 지원하는 단체와 환경단체 등 3곳에도 정기 후원금을 낸다. 큰돈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데는 시민사회 운동이 중요했고, 시민단체도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힘을 보태는 거다.
☞ 윤석윤
1957년 충남 논산 출생. 수산계 전문대학에서 기관학을 전공하고, 부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1990년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학을 공부했다. 수산 회사, 무역 회사, 엔지니어링 회사, 마케팅 회사, 교육 회사 등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뒤 50대 중반에 만난 숭례문학당에서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배워 시니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나는 액티브 시니어'를 비롯해 10권의 자기계발서와 에세이집을 집필했다.
▶하영은 '4대째 의사 가문'이라고 말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려다가 친일 논란이 불거진 거다.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면 책임을 져야 한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있지 않나. 대중들이 왜 분노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먼 후손이라도 조상의 친일 행적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물론 몇 대손인 개인에게 연좌제처럼 책임을 물을 순 없다. 이 비난을 '사회적 의미'를 확대해야 한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해산 하면서 친일파 조사가 잘 안됐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끔 국가 차원에서 역사 청산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또 (친일파) 후손이 조상의 잘못을 책임질 순 없지만, 집안의 역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 역사는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의 반일 감정을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역사의식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의식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사회에 물어야 하고 국가 차원에 물어야 한다. 친일파 후손 중에 연예인도 있겠지만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교수 등 지식인도 많다. 그 사람들 역시 책임지지 않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해야하지 않나. 지금까지 역사 청산이 제대로 안 됐고, 그것에 대해 사회가 공감하고 바로잡는 것으로 이 문제를 확장해야 오히려 개개인을 향한 연좌제가 없어진다.
-친일파 후손으로 사과하고,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도 '사회 문제'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으로 봐야 하나.
▶15년 전 기고는 원래 민족문제연구소 게시판에 비공개로 올렸다. 그해 친일파 재산환수 합헌 결정이 있었고, 연구소 측에서 사회적 환기를 위해 공개하자고 제안해 응했다. 그 후 인터뷰도 사회적으로 보탬이 된다고 하니 했다. 어떤 사회적 영향을 끼치려고 의식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다. 내가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뿐이다.
-친일파 후손으로 사과한 이후 지금까지 민족문제연구소에 회비를 낸다고 들었다.
▶모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진 않는다. 그래도 단체 활동에 동의해 계속 회비를 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뿐 아니라 아프리카·아시아의 아동 교육을 지원하는 단체와 환경단체 등 3곳에도 정기 후원금을 낸다. 큰돈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데는 시민사회 운동이 중요했고, 시민단체도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힘을 보태는 거다.
☞ 윤석윤
1957년 충남 논산 출생. 수산계 전문대학에서 기관학을 전공하고, 부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1990년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학을 공부했다. 수산 회사, 무역 회사, 엔지니어링 회사, 마케팅 회사, 교육 회사 등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뒤 50대 중반에 만난 숭례문학당에서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배워 시니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나는 액티브 시니어'를 비롯해 10권의 자기계발서와 에세이집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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