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중동 지역 파병과 관련해 자원 배치를 기다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지난 4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소고기 관련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연설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적인 압박 속에서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군 전력을 파병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여권 내부가 거센 폭풍우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이 대통령 "호르무즈 파병 결정된 것 없어… 고민 깊다"

5일 정부와 외신 등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전날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검토 여부에 대해 "정해진 것은 없지만 계속 검토하고 있다"며 "다양한 옵션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호르무즈 해협 자유 통항을 위한 군사적 기여 방안과 관련해 "진척된 건 없다"며 "참여할지 여부가 최종 결정 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우리 상선과 원유 수급 루트, 안전 항행 확보 작전을 프랑스·영국과도 논의 중"이라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파병 얘기를 하기는 어렵다"며 "대외적으로 (파병) 얘기를 안 하면 좋겠다. 군사적으로 예민하다. 고민이 깊다"고 말을 아꼈다.

정부는 미국 군함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 목적 자산을 보내는 방안을 우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병력 파견보다 부담이 적으면서도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 지원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다.

정부는 그동안 파병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가 이어지면서 검토 범위가 확대되는 모습이다.

일각서 '호르무즈 파병' 반대론…이라크 파병 때 여권 분열 재현 우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 초청 간담회에서 참석했다.. /사진=뉴시스(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으로 우리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군 전력을 파병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여권에선 청와대의 파병 언급이 한미 간 안보 분야 협상이나 미·북 회담 가능성과도 관련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파병이 이뤄질 경우, 한미 정상이 지난해 합의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등의 관련 실무 협의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일 민주당 이기헌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호르무즈 파병 검토 보도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의원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서 군사 작전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고, 통상 압박까지 암시하는 고압적 제스처를 취한다"며 "동맹을 압박의 도구로 삼는 태도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파병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헌법 5조 1항을 인용해 "대한민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했다. 국립외교원 원장을 지낸 김준형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파병은 어떤 경우에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며 "도대체 왜 이 불법적인 침략 전쟁에 대한민국이 파병을 검토해야 하나"라고 했다.

김종훈 진보당 대표도 "파병은 '결정된 바 없다'는 선 긋기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라며 "이 대통령이 파병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도대체 누가 이런 위험천만한 파병을 검토하고 추진하는지, 그 경위와 책임자를 밝혀야 한다"고도 했다. 여권 내에서는 "파병 문제가 범여권 분열로 이어지는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당청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파병 이슈로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당시와 같은 여권 내 갈등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한국 호르무즈 파병 여전히 기다리는 중"

우리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검토 중인 가운데 미국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란 파병과 관련해 한국과 논의가 진행 중이냐'는 뉴스1의 질의에 "한국은 중동 석유의 가장 큰 수입국 중 하나"라며 "우리는 여전히 한국이 이 지역에 자원을 배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자원 배치'(deploy resources)라는 표현에 해상 안보 협력, 군사 자산 배치(파병), 또는 물자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여가 포함될 수 있다고 분석하며, 미국의 이러한 직접적인 요구가 향후 한미 간 안보 협의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파병과 관련해 미 행정부가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으로, 사실상 한국 정부의 결단을 압박한 걸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한국과 일본 등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 대응을 위한 군함 파견을 요구해왔다.

실제 파병이 결정될 경우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논의를 거쳐 파병안을 마련한 뒤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부가 비전투 자산 지원을 포함한 어떤 수준의 참여 방안을 선택할지가 향후 한미 간 주요 외교·안보 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