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업지구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한 북한이 대한민국 정부에 446억여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개인이 아닌 정부가 북한 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첫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북한에 손해배상 이행을 강제할 수단은 없지만, 북한의 불법행위를 명확히 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소송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재판장 김형철)는 16일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 446억2641만원을 전액 인정했다. 소송 비용도 북한이 부담하도록 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해 9월 개성공업지구에 문을 열었다. 북한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듬해인 2020년 6월 대북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6월 연락사무소 폭파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3년)를 중단하고 국가 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손해배상 청구 시효 만료일이 지나면 소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전에 소송을 제기한 것. 지금까지 북한이탈주민 등 개인이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은 많았지만, 한국 정부가 원고로 이름을 올린 것은 처음이다.
통일부는 연락사무소 청사 102억5000만원과 폭파로 부서진 인접 종합지원센터 건물 334억5000만원 등을 합해 447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집계했다. 연락사무소가 설치된 공단의 토지는 북한 소유지만 건설비로 우리 세금 약 180억원이 투입됐기 때문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북한에 소송 서류를 송달할 수 없어 재판은 보류돼 왔으나 정부가 2024년 12월 공시송달을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지난해 4월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공시송달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소송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울 때 법원 게시 등을 거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내용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절차다.
재판부가 북한의 법적 책임을 인정했더라도 실제 배상액을 추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한이 손해배상액 지급에 응하지 않는 이상 국내에 북한 당국의 재산이 없기 때문에 강제 이행 수단은 없는 것이다.
다만 정부의 소송 제기는 북한의 위법행위에 책임을 묻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통일부는 2023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북한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법률적으로 명백한 불법 행위이고, 남북 간 상호존중과 신뢰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며 "북한이 우리 정부 및 우리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재판부는 지난달 12일 선고할 예정이었으나, 이재명 정부의 통일부가 판결 이후 조치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선고기일 연기를 요청하면서 이날로 미뤄졌다. 통일부는 판결이 나온 직후 "정부는 법원 판단을 존중하며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나가겠다"며 "정부는 남북대화가 재개돼 모든 남북 간 문제가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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