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2026.9.17/사진=뉴스1


정부가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초기 2년간은 약국에서 약을 받을 수 없다. 약사가 조제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법무부 해석 때문이다. 법 개정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17일 정부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미프진'으로 알려진 '미프지미소'의 품목허가를 심사 중이다. 수입사 현대약품이 신청한 사용 범위는 임신 9주(63일) 이내다.



성평등가족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날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내년 1분기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초기 2년간은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한다.

미프진은 한국인 대상 가교시험을 거치지 않았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프진은 1988년부터 약 100개국에서 다양한 인종에 사용됐다"며 "전문가 자문에서 가교시험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허가 시점에 대해서는 "업체가 만족할 정도의 보완을 해야 해 '몇 월'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지 방법으로 수술만 규정한다. 그런데도 약을 들여올 수 있는 근거는 법제처 해석이다. 법제처는 지난달 식약처 질의에 임신중지약 품목허가가 모자보건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약국 조제는 형법에 막혀 있다. 형법 270조 1항은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약제사 등을 처벌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자기낙태죄 조항과 이 조항의 '의사' 부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개선입법 시한을 넘기면서 해당 부분은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약제사 처벌 부분은 그대로 남았다. 헌법소원 청구인이 산부인과 의사여서 심판 대상도 의사 부분으로 한정됐다. 약사가 조제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법무부 해석은 여기서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형법·모자보건법이 개정돼야 약국 조제로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복지부가 함께 고쳐야 한다고 한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지를 좁게 허용한다. 허용 사유는 강간이나 근친 간 임신, 임신부 건강을 크게 해치는 경우 등으로 한정된다. 임신 24주 이내여야 하고 배우자 동의도 받아야 한다. 경제적 형편 같은 이른바 '사회·경제적 사유'는 빠져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6일 입장문에서 "사회·경제적 사유의 임신중지약 처방은 형사처벌 우려에 직면하게 된다"고 밝혔다. 도입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환자 안전과 의료인의 법적 보호를 담보하지 않는 어떠한 도입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모자보건법 개정안 5건이 계류돼 있다. 남인순·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손솔 진보당 의원안은 허용 사유 제한을 없애고 약물 사용을 허용했다.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안은 허용 상한을 임신 22주로 줄이고 의사의 수술 거부권을 담았다.

사전 상담을 의무화할지도 쟁점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지역상담기관에서 임신 유지·중지 상담을 받은 뒤 임신중지를 받도록 했다.

장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시대]와 통화에서 "임신중지는 빨리 할수록 모체에 해가 적다"고 말했다. 이어 "상담을 의무화하면 병원에 갔다가 상담을 받고 다시 병원을 찾는 데 며칠에서 일주일 이상 걸린다"며 "그만큼 임신 주수가 늘어난다"고 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2023년 논문에서도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자율적으로 이용하는 체계를 제안했다.

입법과 별개로 정부가 정할 이용 조건들도 아직 남아있다. 약값과 건강보험 적용 여부는 미정이다. 곽순헌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16일 브리핑에서 "건강보험 급여화를 검토하려면 제약사의 급여 신청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 허가 신청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 미성년자의 보호자 동의 기준도 정해지지 않았다.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의 이용 여건도 과제다. 조민경 성평등가족부 성평등정책관은 같은 브리핑에서 "청소년과 저소득층, 농어촌 지역 거주 여성 등을 대상으로 지역별·대상별 접근성을 파악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