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시대 진나라의 충신 기황양은 원수든 아들이든 가리지 않고 오직 적임자만 추천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23일 여의도 본원에서 8개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기황양의 인재 천거 고사를 꺼내며 능력 중심 인사를 주문했다. 하반기 주요 은행장을 포함해 70여개 금융지주 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특정 계파나 회장과의 친소관계에 얽매이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다. 이 원장은 지난 15일 임원회의에서도 금융사 CEO 후보군의 관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점을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이같은 문제의식은 올 초부터 이어졌다. 금융위원회는 1월 이사회의 독립성과 CEO 선임의 공정성·투명성을 제도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현 경영진이 후임자 선임 절차를 좌우하던 '참호 구축' 관행을 바로잡을 시험대가 될지 주목된다.
KB 필두로 은행장 인선 속속 개시
올해 임기가 끝나는 5대 금융그룹 자회사의 CEO는 5대 은행장을 포함해 총 54명이다. iM·BNK·JB금융 등 8대 지주로 넓히면 70여개 자회사의 CEO 선임 절차가 진행된다. 인사 구도의 변화가 빠른 곳은 KB금융이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1일 양종희 현 회장의 후임으로 이재근 지주부문장을 최종 후보에 선정했다.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이홍구 KB증권 WM부문 대표,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 등 10명의 임기도 올해 끝난다.
신한금융은 지난 21일 승계 절차를 시작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과 박창훈 신한카드 사장, 이선훈 신한투자증권 사장 등이 인사 대상이다. 하나금융은 이호성 하나은행장과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 성영수 하나카드 대표 등 13개사가 CEO의 연임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금융도 정진완 우리은행장과 진성원 우리카드 대표, 남기천 우리투자증권 대표 등 12명의 임기가 종료된다. NH농협금융은 강태영 NH농협은행장과 박병희 NH농협생명 대표, 송춘수 NH농협손해보험 대표 등 7명이 대상이다.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은 다음 주 승계 절차를 시작한다.
현행 금융사지배구조법은 금융회사가 임추위의 추천을 받아 CEO를 선임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최종 후보 선정 단계에서 은행 측 위원회의 권한 범위는 지주마다 다르다. KB금융은 지주와 은행 간 이중 심사 구조가 뚜렷해 지주 위원회가 은행장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고 최종 후보를 추천하면 은행 위원회가 해당 후보를 검증할 수 있다.
하나금융은 은행 측 위원회가 후보군을 추천하면 지주 임추위가 심의하는 구조다. 다만 최종 후보 선정에 의견을 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금감원은 지난 7월 하나금융 정기검사에서 이 부분을 지적했다. 금감원은 은행 임추위의 의견이 평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봤다. 우리금융도 자회사 임추위가 지주에 후보 추천을 할 수 있지만 최종 후보의 선정은 지주가 맡는다.
신한금융은 이번 인선부터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후보군 형성 단계까지 넓히는 방향으로 절차를 바꿨다. CEO 자격 요건을 구체화하고 세부 평가기준도 마련키로 했다. 금감원이 문제삼은 것은 자회사 임추위의 승계 절차 참여보다 후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직접 추천 또는 의견을 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 원장은 "법의 취지에 따라 자회사 임추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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