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오전 9시를 앞둔 경기 성남시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문이 열리기 전부터 입구에는 고객 30여 명이 줄을 섰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부터 출근 전 잠시 들른 청년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오전 9시 셔터가 올라가자 고객들은 차례로 들어가 번호표를 뽑았다. 입출금뿐 아니라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상담을 받으려고 은행을 찾은 고객도 있었다.
이날 영업점을 찾은 한 고령 고객은 "우리는 아침 일찍 일 보는 게 편하다"며 "앱 같은 건 잘 못하니까 은행에 직접 와야 한다. 문 여는 시간이 늦춰지면 하루 일과가 그만큼씩 순차적으로 지연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르면 내년 4월부터 은행 개점시간이 오전 9시에서 9시30분으로 변경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전날 이를 포함한 산별중앙교섭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평일 창구 이용시간은 하루 7시간에서 6시간30분으로 줄어든다. 금요일에는 오후 3시30분부터 신규 업무 접수를 마감하는 '라스트콜'도 도입된다. 잠정합의안은 지부대표자회의 추인 등을 거쳐 확정된다.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은 "건국 이래 최초의 은행 영업시간 30분 단축"이라며 "노동시간 단축과 일·생활 균형을 위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했다.
정부 인가로 과점 지위 누리는 은행
노사 합의 내용 발표 뒤 정부의 인가를 받아 과점적 지위에서 영업을 하는 은행들이 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게 타당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은행 영업시간의 변화는 국민 개개인의 경제활동은 물론 가계·기업 등 경제주체들에까지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양민호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지난 8월 27일 총파업 기자간담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금융서비스 축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금융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를 마련하고, 이를 청년 일자리로 연결하는 것이 금융노조의 방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달 뒤에 나온 합의는 영업시간 단축이었다.
양민호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지난 8월 27일 총파업 기자간담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금융서비스 축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금융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를 마련하고, 이를 청년 일자리로 연결하는 것이 금융노조의 방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달 뒤에 나온 합의는 영업시간 단축이었다.
은행업을 하려면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은행법은 은행의 건전한 운영뿐 아니라 예금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 국민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명시한다. 은행이 민간 기업이면서도 예금·대출·지급결제 등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필요한 서비스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몇 시에 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지는 은행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 은행 영업시간은 노사 단체협약과 개별 은행의 운영방침으로 정해져 왔다.
해외에서는 은행 영업시간을 바꿀 때도 고객의 금융서비스 이용에 미칠 영향을 따진다. 일본은 은행법 시행규칙에 영업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로 정하고, 영업점별로 시간을 달리할 때 고객 편의를 현저히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을 뒀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영업시간을 장기간 줄여 고객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도 점포 폐쇄 관련 지침을 적용한다. 이용객이 많은 오전 시간대라면 단축 폭이 작아도 고객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도 은행 점포를 폐쇄할 때는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살피도록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 3월부터 반경 1㎞ 이내 점포 간 통·폐합에도 사전영향평가와 지역 의견청취를 거치도록 했다. 하지만 영업시간 변경에 관한 규정은 없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시대]에 "지금은 은행 직원들의 워라밸보다 고객 서비스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는 고객에게 개점시간 단축은 서비스 축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층은 연금이나 자산관리 등 은행의 영업 창출 원천인데 은행 스스로 이를 줄여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논의 없는 결정 부적절"
노조가 오전 9시30분 개점을 요구해온 이유 중 하나는 직원들의 조기 출근 부담이다. 오전 9시에 고객을 맞으려면 그 전에 출근해 현금 시재와 전산기기 등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노조가 2024년 공개한 한 지부 조사에서는 영업점 직원 6459명 중 5492명(85%)이 오전 8시30분 이전에 출근한다고 답했다. 노조는 그해 산별중앙교섭에서도 개점시간을 늦추자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 교섭 초반 노조는 주 4.5일제와 정년 65세 연장, 임금 8% 인상 등을 요구했다. 9월 총파업을 앞두고는 임금 인상 요구를 6%로 낮추고 국책은행 지방이전 반대를 주요 요구로 내세웠다. 28일 마련된 잠정합의안에는 총액임금 3% 인상과 오전 9시30분 개점, 주 1시간 이내 자율출근제, 금요일 라스트콜 등이 담겼다. 금요일 조기퇴근을 사용하지 못한 직원에게 연간 최대 이틀의 보상휴가를 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국책은행 지방이전 철회는 빠졌고, 30일 예정됐던 2차 총파업은 철회됐다.
이에 이번 합의가 임금과 근로조건을 맞바꾼 협상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애초 8%였던 인상요구안이 3%로 합의되는 과정에서 영업시간 단축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사용자 측이 임금 인상폭을 낮추는 대신 영업시간 조정 등 비용 부담이 적은 카드를 내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대]에 "은행업은 면허산업이자 사회적 인프라이다. 노사가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영업시간을 일괄 단축하는 게 적절한지, 당국이 이런 문제에서 물러서 있는 게 맞는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합의가 이뤄진 마당에 재합의를 요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대]에 "직원들의 근로여건 개선은 필요하지만 근로시간 조정과 고객 영업시간 단축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사 자율교섭은 존중하되 금융소비자의 접근권까지 영향을 받는 사안을 소비자 의견이나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평가 없이 산별교섭만으로 일괄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조기 출근에 대한 보상이나 교대근무, 시차출근 등을 우선 검토할 수 있다. 영업시간을 조정하더라도 고령층과 소상공인의 이용 수요, 지역 특성을 반영해 오전 9시 개점 점포나 탄력점포를 확보하는 등 소비자 보호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교섭 초반 노조는 주 4.5일제와 정년 65세 연장, 임금 8% 인상 등을 요구했다. 9월 총파업을 앞두고는 임금 인상 요구를 6%로 낮추고 국책은행 지방이전 반대를 주요 요구로 내세웠다. 28일 마련된 잠정합의안에는 총액임금 3% 인상과 오전 9시30분 개점, 주 1시간 이내 자율출근제, 금요일 라스트콜 등이 담겼다. 금요일 조기퇴근을 사용하지 못한 직원에게 연간 최대 이틀의 보상휴가를 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국책은행 지방이전 철회는 빠졌고, 30일 예정됐던 2차 총파업은 철회됐다.
이에 이번 합의가 임금과 근로조건을 맞바꾼 협상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애초 8%였던 인상요구안이 3%로 합의되는 과정에서 영업시간 단축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사용자 측이 임금 인상폭을 낮추는 대신 영업시간 조정 등 비용 부담이 적은 카드를 내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대]에 "은행업은 면허산업이자 사회적 인프라이다. 노사가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영업시간을 일괄 단축하는 게 적절한지, 당국이 이런 문제에서 물러서 있는 게 맞는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합의가 이뤄진 마당에 재합의를 요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대]에 "직원들의 근로여건 개선은 필요하지만 근로시간 조정과 고객 영업시간 단축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사 자율교섭은 존중하되 금융소비자의 접근권까지 영향을 받는 사안을 소비자 의견이나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평가 없이 산별교섭만으로 일괄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조기 출근에 대한 보상이나 교대근무, 시차출근 등을 우선 검토할 수 있다. 영업시간을 조정하더라도 고령층과 소상공인의 이용 수요, 지역 특성을 반영해 오전 9시 개점 점포나 탄력점포를 확보하는 등 소비자 보호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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