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안보 분야에서 한미관계가 위기에 처했음을 알려주는 경고음이 줄을 잇고 있다.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할 국가정보원 화이트 요원(신분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정보 요원)의 비자 발급이 지연되고 있다는 6일 보도가 시작이었다. 이어 이종석 국정원장이 지난 3월 미국 국방부 산하 국가지리정보국(NGA)을 방문하려다 불발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국정원은 이 원장의 방문 시도 자체를 부인했지만 NGA가 인공위성 등을 활용해 북한 등의 정밀 지리공간정보(GEOINT)를 수집·분석하는 정보기관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말에는 미국에서 열린 '사이버 위협 대응 한미일 실무그룹 회의'에 국정원 인사는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이버 해킹 대응을 담당하는 국정원이 배제됐다면 정보 당국 간 사이버 공조가 삐걱거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개천절·국군의날 기념 리셉션에 미국 정보기관 인사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유사시 미 항공 전력이 전개될 한미 공동운영기지인 광주 군 공항의 호남 반도체 부지 지정과 이전 추진에 대해 주한미군 측이 이견을 드러낸 점도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문제는 미국 당국이 우리 기관을 불신하게 된 근본 요인이다. 지난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북한의 평안북도 구성시를 새로운 핵시설 소재지로 언급하면서 불거진 한미 간 공유 정보 누설 논란이 그 시작이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쿠팡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와 그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미국 정계와 백악관, 하원 법사위 등의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논란을 말끔히 정리하지 못하고 앙금을 남긴 것도 문제다.
주한 미국대사대리를 지낸 케빈 김 주아세안 미국대사가 "초유라고 할 만큼 한·미 관계가 너무 안 좋다"고 우려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갈등의 이면에는 대북 정보 누설 논란뿐 아니라 한국 정부가 중국에 기울어질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 서방이 제재 중인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에 나서는 서울에 대한 워싱턴의 불만이 담겼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인식에 대한 총체적 분석을 통해 '불신의 근원'을 직시하고 이를 해소하는 근본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한미 '정보동맹' 위기 상황에서 8일 우리 정부는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로 결정했다. 서방 지원으로 러시아 침략에 맞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한국이 최고 수준의 외교적 경고를 한 것이다. 지금 이럴 때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북한군 포로 송환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이 정도까지 비화할 사안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러시아에 경유 등을 대거 공급했다는 가디언 보도를 인용하며 대러 제재 기조와 배치된다고 공개 비판한 우크라이나 측에 대한 불만 표시일 수 있지만, 이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유럽 국가들의 불만으로 이어져 한국과의 방산·북핵외교 협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한미 동맹 불신 해소라는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지 않나. 갈수록 외교·안보 정책이 위태위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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