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중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로 '대북 저자세'와 '동맹엔 가혹하고 적에겐 친절하다'가 있다. 모두 2026년 9월 21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이후의 우리 측 대처와 관련한 말들이다. 조사 결과 해당 폭발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 이남 우리측 지역에 의도적으로 매설한 지뢰에 의해 발생한 도발로 결론이 내려졌다.

저자세 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북 저자세' 비판에 "지금 저자세라는 소리를 많이 하던데, 그럼 고자세로 (북한과) 한판 뜰까요"라고 말한 일화다. 하지만 '저자세'의 반대말은 '고자세'나 '한판 뜨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관된 원칙과 확고한 대처도 평화를 지키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파주 DMZ 지뢰 도발과 관련해 강현우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지난달 30일 "북한은 우리 정부의 일관된 한반도 평화공존 노력에도 군사분계선 인근 지뢰매설 등 소위 '국경선 요새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고 지적하며 요새화 중단을 요구했다. 강 본부장의 말대로 북한은 2023년 12월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전쟁 중의 적대적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이래 적대행위를 계속해왔다.
남북의 군사적 기준선에 불과한 MDL을 이른바 '국경선'으로 부르면서 DMZ 요새화는 물론 남북을 가르는 장벽 건설까지 진행했다. 2024년에는 사실상 우리가 가설한 경의선·동해선 도로와 철도를 폭파하며 남북 연결로를 끊었다. DMZ 북측 수목을 제거해 불모지로 만들고 지뢰를 매설했으며, 철책을 MDL 가까이 옮기고 참호·장애물을 구축하는 요새화 작업을 벌였다. 문산·적성·철원·고성 등 6·25전쟁 당시 남침로였던 주요 4개 축선에는 약 10km에 걸쳐 높이 4~5m, 폭 2m의 대전차 방벽을 설치했다.
이는 북한의 기존 남침 계획과 맞물려 주목된다. 요새화와 방벽 설치 지역은 김정은 정권의 전쟁계획으로 알려진 '2015 통일대전'의 공격 예정 경로와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2014년 우리 측이 입수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은 모두 세 방향의 핵심 공격로를 통해 수도권을 점령하는 작전을 짰다. 평양 방어를 맡은 4군단의 특수전 부대를 서해안의 김포·인천·남양만에 상륙시키고, 문산·김포 축선과 광덕산(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 축선을 더해 모두 3개의 공격로로 수도권을 포위한다는 작전이다. 북한이 요새화와 대전차 장벽 설치에 나선 곳이 이 공격로와 겹치는 게 우연일까?
김정은은 이미 2013년 "전연부대(전방부대)들을 비롯, 육군·해군·항공 및 반(反)항공군, 전략로케트군 장병들이 우리 식의 전면전을 개시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며 '우리식 전면전' 작전을 공개했다. 핵미사일을 앞세워 미국의 증원부대 파견과 일본의 지원을 차단하면서 3~5일 만에 전쟁을 종결하는 계획이다. 사실 북한의 핵전쟁 계획은 이미 김정은 시대에 '판가리 전략'이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판가리'는 북한 사투리이자 군사용어로 '생사존망을 판가름하는 사생결단의 승부나 결말을 내는 것'을 뜻한다. 그런 북한에 저자세를 보인다고 비핵화나 핵무기 감축, 또는 핵전력 증강 중단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일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1938년 9월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피하겠다며 "최후의 영토적 요구"라는 나치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말을 믿고 동맹국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 영토를 넘긴 '뮌헨 협정'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당시 협정문에 서명하고 런던에 돌아온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는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다"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불과 20년 전에 끝난 제1차 세계대전의 악몽이 생생했던 체임벌린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전쟁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 굴욕스러운 양보와 신생 약소국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방적인 희생, 그리고 동맹 배신이란 외교적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화정책(appeasement)'으로 불리는 저자세 외교다. 당시 체임벌린이 노벨 평화상이나 기사 작위를 받게 될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유화정책의 끝은 노벨 평화상이 아닌 전쟁이었다. 나치 독일은 뮌헨협정을 맺은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런 히틀러와 손잡고 그해 8월 불가침조약을 맺은 뒤 함께 폴란드 침공에 나섰다. 하지만 1941년 6월 나치 독일의 전면 공격을 받고 4년 동안 싸우며 약 2700만 명의 인명피해를 봤다.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고 저자세 외교로 히틀러의 비위를 맞췄더니 결국 간만 키워 전쟁을 부른 셈이 됐다. 북한의 적반하장 언행에도 침묵하고 자제하는 건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 틀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원칙 없는 저자세는 상대 오판을 부를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1938년 뮌헨 협정은 21세기 한국에서도 고민할 숙제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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