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AI비즈니스전공 교수, 인지과학자


"AI로 내가 뭘 하면 좋을까요?" 강연을 마치고 나면 정말 자주 받는 질문이다. 특히 은퇴한 분들, 경력을 다시 시작하려는 분들이 자주 묻는다. 처음에는 도구 쓰는 법이 막막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되물어본다. "선생님, 혹시 GPT나 제미나이로 문서 작성하고, 그림 만드는 방법은 아시죠?" "네, 당연하죠." 대답에 망설임이 없다. 도구는 이미 잘 쓴다. 그들이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그 도구로 자신이 무엇을 할지다.

이럴 때마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린다. 갈림길에 선 앨리스가 나무 위에 앉은 고양이에게 묻는다. 여기서 어느 길로 가면 되겠냐고. 고양이가 답한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다고. 루이스 캐럴이 1865년에 쓴 장면인데, 160년이 지난 강연장에서 나는 자주 그 고양이의 자리에 앉게 된다.



자동차가 생겼다고 해보자. 운전도 마스터했다. 그런데 그 차를 몰고 어디로 갈지를 내게 묻는 상황이다. 차를 다루는 섬세한 요령, 주의할 점은 얼마든지 안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로 어디를 갈지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선택이다. 내가 길을 제시할 수는 없다. 내 길이 아니기에 나는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선뜻 선택하지 못할까? 이 질문을 하는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학교와 직장이 바른길,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제시한 것을 누구보다 묵묵히 따랐던 분들이다. 수십 년 동안 목적지는 늘 밖에서 주어졌다. 시험 범위가 있었고, 인사 발령이 있었고, 분기 목표가 있었다. 그들은 그 길을 성실하게 완주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쥐여주고 당신 마음대로 가보라고 하니, 살아보라고 하니 주저한다. 게을러서 생긴 주저함이 아니다. 목적지를 스스로 정해본 기억이 너무 오래됐을 뿐이다.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 같은 제삼자의 조언이 아니다. AI로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다른 은퇴자들의 화려한 이야기도 아니다. 단지 꿈이 필요하다. 자신의 깊은 곳에 어떤 꿈이 잠들어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꿈이라는 단어가 몹시 무겁게 느껴진다면 작은 관심, 미뤄둔 마음으로 바꿔서 찾아봐도 좋다.



아무리 떠올려도 흐릿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일단 가보면 좋겠다. 조직행동학자 허미니아 아이바라는 경력 전환을 겪은 39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그중 일부는 수년에 걸쳐 추적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2003년 『워킹 아이덴티티(Working Identity)』를 펴냈다. 책에는 문학 교수가 증권 중개인이 되고, 투자은행가가 소설가가 되는 전환이 등장한다. 아이바라가 발견한 변화의 과정은 통념과 달랐다. 무엇을 원하는지 충분히 알아낸 뒤에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시도를 하고 그 경험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알아가는 것이었다. 책상 앞에서 적성을 따지고 계획부터 세우던 사람들은 오히려 제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주말에 해보고, 곁가지로 해보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보면서였다. 우리는 생각해서 나를 알게 되기보다 해보면서 나를 알게 된다는 얘기다.

AI라는 두 번째 지능은 낯선 길을 가보는 데 드는 값을 크게 낮췄다. 예전에는 미뤄둔 마음을 꺼내 보려면 학원에 등록하고, 사람을 구하고, 몇 달을 들여야 했다. 지금은 손주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어보는 데, 평생 해온 일의 요령을 작은 안내서로 정리해보는 데 주말 이틀이면 된다.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로 들어서면 된다. 결과물이 서툴러도 괜찮다. 서툰 결과물 앞에서 마음이 더 가는지, 식는지를 보려는 것이니까 말이다. 헤맬지라도 움직이다 보면 찾게 될 때가 있다. 다만 AI가 길을 빨리 가게 해줄 수는 있어도 목적지를 대신 정해주지는 못한다. 그 질문은 고양이에게도, 나에게도, AI에게도 넘길 수 없다.

그래도 고양이는 앨리스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둘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앨리스: 어디로 가든 별로 상관없어.
고양이: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상관없겠네.
앨리스: 어딘가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말이야.
고양이: 충분히 오래 걸으면 어딘가에는 도착할 거야.
김상균 경희대 교수는 인지과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고와 경험, 그리고 기술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최근엔 AI 확산과 인간의 확장된 미래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저술활동 외에도 강연과 유튜브 등을 통해 기술 변화를 쉽게 풀어내며 대중적으로 폭넓은 공감과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