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사전 예고 없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방문했다. 최근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중국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만나고, 중국군의 6·25전쟁 참전을 기리는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았다.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피로 맺어진 북중 친선을 굳건히 계승할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현지 버스공장도 시찰한 뒤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담 없이 당일 귀국했다.
이번 방중은 전통적 혈맹을 경제협력 확대로 이어가려는 행보로 읽힌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에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지원까지 더해지면 북한은 제재 압박을 견디며 대미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북·중·러의 이해가 모든 사안에서 일치하지는 않지만, 북한이 두 강대국을 배경으로 운신의 폭을 넓힐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방중 시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다음 달 미국 중간선거와 중국 선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둔 만큼, 향후 외교 일정까지 염두에 둔 포석일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전주곡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주요국 협의에 앞서 중국과의 유대를 다져두려는 계산은 읽힌다. 우리도 대화 성사 여부만 바라볼 때가 아니다. 어느 국면에서든 한국의 안보 이익이 반영되도록 준비하고, 대화의 기회를 살리되 억제력은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한미관계에서는 우려스러운 신호가 이어진다.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는 최근 양국 관계가 '난기류'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화 주미대사도 백악관과의 소통에 한계가 있고 고위급 협의가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동맹 사이에도 이해관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좁힐 협의마저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다지는 동안 한미 간 정보 협력과 정책 조율이 삐걱거린다면 우리의 외교적 입지는 좁아질 수 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이 주요 논의에서 뒤처져서는 안 된다.
동맹을 둘러싼 국내 논의도 신중해야 한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한 좌담회에서 앞으로 20~30년을 내다보면 한미동맹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중 경쟁에 휘말릴 위험을 경계하고 한국의 자율성을 넓히자는 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저주라는 표현은 동맹의 역할과 한계를 차분히 따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동맹의 억제력을 유지하면서 국익에 맞게 역할과 부담을 조정할 구체적 방안이다.
정부는 통상·안보 현안의 이견을 정리하고 한미 간 고위급 협의를 서둘러야 한다. 정보 협력의 걸림돌을 해소하고 대북 정책의 목표와 대응 원칙을 조율해야 한다. 중국과의 소통도 이어가야 한다. 북중 교역 확대가 대북 제재의 실효성을 약화하지 않도록 살피고, 중국에 한반도 안정의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동맹의 신뢰를 다지는 일과 주변국과의 외교 공간을 넓히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 정세 변화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긴밀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우리의 발언권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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