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이 대와 방망이./은평역사한옥박물관


'더OO법률'이라는 일간지가 있습니다. 신문에 TV 편성표가 있고, 스도쿠가 있습니다. 연재만화, 오늘의 명언, 상식 퀴즈 칸도 보입니다. 하나둘 사라진, 예전에 일간지에 다 있던 것입니다. 추억 속에 있던 유물들을 다시 지면에서 보니 자연스레 눈이 커졌습니다.

지난해에 생긴 '더OO법률'은 어떻게 이런 골동품의 상속자가 됐을까요? 이 질문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왜 신문에서 그런 것들이 사라졌는지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작은 한 세대 전에 등장한 인터넷 때문이었습니다. TV 편성표, 만화, 퀴즈가 온라인 세계에 다 있고,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인터넷은 '포털'이라는 공룡을 낳았고, 신문의 기능 중 상당 부분이 그리로 옮겨갔습니다.



그 뒤 결정적 한 방이 또 날아들었습니다. '모바일'입니다. 2010년 무렵 '스마트폰'이 대중의 손에 들리게 됐습니다. 뉴스를 전화기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포털에 모든 정보가 담겼습니다. 그러자 밤에 신문사에 전화로 '상식'을 묻는 사람들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종목이 레슬링이냐, 유도냐 이런 질문 말입니다. 대화 중 언쟁이 붙어 "신문사에 전화 걸어 물어보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때는 성가신 일이었는데, 지금은 꽤나 그리운 장면입니다.

회고를 접고, 다시 '더OO법률'로 갑니다. TV 편성표에 오후 9시까지만 프로그램이 적혀 있습니다. 짐작하셨습니까? 9시 이후에는 TV를 볼 수 없는 사람들, 교도소 수형자를 주요 독자로 삼은 신문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곳, 포털과 유튜브가 없는 곳. 석기시대 같지만 불과 한 세대 전 세상이 그랬습니다. 그곳에서 신문은 미디어의 왕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수형 생활을 마친 사람에게 더OO법률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재판 얘기, 법률 얘기로 기사가 도배돼 있고, 오락거리가 많아 인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선 일반 신문도 많이 본다. 바깥세상이 궁금하고,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까. 신문은 그곳에선 필수품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인터넷, 스마트폰이 없는 곳. 신문 기자 입장에서는 더 바랄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하지만 시계를 뒤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시민 다수가 닫힌 공간에 살기를 바랄 수도 없습니다.

유튜브가 궁금한 것을 알려주고,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대꾸가 기사를 대신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동행 미디어 시대는 지난 15일부터 종합일간지 종이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질문 많이 받았습니다. "요즘 누가 종이신문을 읽는다고?" "왜 레드오션에 뛰어드나?" "신문 배달도 어려울 텐데…." 걱정과 지적이 섞여 있었습니다.

저도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습니다. "왜 신문을 만드는가?" "지금 이 시대에 신문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질문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10년 전쯤 이른바 '조국 사태'와 '탄핵 사태'로 숨 가쁘게 살 때 신문기자라는 업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습니다. '읽는 사람도 별로 없는 종이신문에 왜 이토록 신경 써야 하나?'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이렇게 매달릴 일인가?' 저뿐만 아니라 젊은 날을 신문 만들기에 쏟아부은 많은 기자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때 제 마음을 읽은 후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방망이 깎는 노인이잖아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작가 윤오영) 얘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 글을 찾아봤습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이 대목을 반복해 읽었습니다.

눈에 확 들어온 부분이 또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중략)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달 전쯤 시대의 수습기자들이 '신문의 효용성'에 대해 묻길래 이 글을 권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신문 제작에는 품이 많이 듭니다. 기사 위치, 크기, 순서 등 생각할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편집, 조판, 인쇄, 배달에 일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방망이를 깎는 것 같은 우직함 없이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질문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일단 열심히 깎아보려 합니다. 쓰다 보니 길어져 지금 깎고 있는 게 무엇에 쓰는 방망이인지, 뭐가 다른 방망이인지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노인의 공이 듬뿍 든 물건을 받아 들고 흡족해했던 작가의 아내 같은 독자들이 있는 한 성심성의껏 만들겠습니다.
이상언 시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