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대표팀을 둘러싼 난맥상이 끝을 모른 채 깊어지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불투명하고 독단적인 행정이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반복됐다. 홍 감독 체제로 치러진 북중미월드컵은 32강 진출 실패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성적표와 감독 사퇴로 이어졌다. 이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대표팀 안팎의 혼란은 전혀 수습되지 않았다. 임시 감독 체제라는 대표팀의 파행적 운영은 현재 한국 축구가 처한 비정상적인 현실의 단면이다.
협회 수장 부재와 감독 공백이라는 외형적 문제보다 더 치명적인 점은 대표팀 내부 파열음이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구심점과 일명 '96년생 라인'으로 대표되는 핵심 선수단 사이의 갈등이 최근 부각되면서 대표팀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졌다. 향후 선거를 통해 차기 협회장이 선출되고 정식 감독이 선임돼 외형적인 구심점이 마련된다 해도 이미 외부로까지 표출된 선수단 내부의 파탄 난 상호 신뢰가 자연스럽게 회복될지는 의문이다.
더 씁쓸한 대목은 갈등의 중심에 선 주요 인물 대다수가 이른바 '축구 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 무대에서 뛰고 있는 점이다. 유럽리그에서 활약하는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은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다. 그러나 유럽 축구 문화의 본질은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닌 그 자유를 받쳐주는 '지켜야 할 선과 엄격한 책임'이다.
최근 포르투갈 대표팀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선수단을 무단 이탈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사례를 보자. 호날두는 대표팀 소집 도중 선발 출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단으로 팀 숙소를 이탈해 소속팀에 복귀했다. 그는 헤르헤 제주스 감독이 약속을 두 차례 어겼다고 "신뢰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동료와 팬들에게 사과했으며 협회로부터의 징계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호날두는 협회로부터 255유로(약 38만원)의 제재금과 함께 출전정지 30일의 징계를 받았다. 당초 최대 6개월 출전정지 징계까지 거론됐음을 감안하면 수위가 낮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징계의 무게보다 과정이다. 세계 최고의 스타라 할지라도 규정에 따라 절차를 밟아 징계를 받았다는 자체가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증거다.
반면 우리 대표팀의 일부 선수들이 보여준 단체 행동이나 요구는 유럽 리그의 자율성만 따랐을 뿐, 프로라면 갖춰야 할 책임 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이 몸담은 유럽에서라면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행태다.
내홍 속에서 대표팀은 당장 내년 1월 아시안컵에 출정한다. 우승이라는 목표와 함께 땅에 떨어진 팬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신뢰는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는다. 여기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이후 일부 선수들이 보여준 오만한 언행과 부적절한 언론 대응은 침묵하던 팬들까지 분노케 했다. 성적만 내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그들만의 착각이 팬들의 상실감과 배신감을 극대화시켰다.
직시해야 할 점은 또 있다. 새 협회장이 선출되고 명망 있는 감독을 영입하면서 프런트를 대대적으로 물갈이한다 해도 뿌리 깊은 불신이 저절로 풀리지는 않는다. 사람이 바뀌는 '인적 쇄신'이라는 착시 효과는 유효기간이 짧다. 필요한 것은 사람이 아닌 '명확하고 단단한 시스템 '이다. 그 시스템은 지위고하나 이름값에 관계없이 모든 선수들에게 예외 없이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선수는 물론 대표팀과 관련한 모든 이의 권리와 의무가 분명해야 한다. 규율을 위반했을 때 누가 판단하고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가 사람이 아니라 규정으로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시스템을 운영할 프런트는 행정적 전문성과 공정성이 필요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 역시 시스템 안에서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인물 한두 명을 바꾸는 임시방편으로는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없다. 한국 축구가 도입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시스템, 그리고 이를 타협 없이 지키며 결과에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행정이다. 바닥으로 추락한 한국 축구가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인내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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