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이 권력이다." 철학자 미셀 푸코의 주장에 따르면 지식의 생산은 곧 권력의 생산이다. 인공지능(AI)이 고도화되면서 인간이 해온 추론과 판단 등 지적 능력을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잘 활용하는 능력은 일터와 사회에서 힘,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AI가 권력을 생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AI가 인간의 능력을 앞지르는 '특이점'이 언제 도래할 것인지 관측도 분분하다. 지금은 과연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이처럼 AI 시대를 맞은 가운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 지원자가 올해로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2025학년도 1만9천400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26학년도 시험에서 1.8% 감소했다. 2027학년도에는 전년보다 9.8% 줄었다. 리트는 사법시험 폐지 이후 법조인이 되는 유일한 관문이다. 역량있는 각 분야의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통했다. 한풀 꺾인 추세가 계속될 것인지 당장은 알 수 없다. 다만 최근 사회 흐름이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AI가 변호사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반도체와 AI 분야에서 채용 기회가 늘어나며 보상이 치솟은 점 등이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푸코는 사회 구도를 '올바른 쪽'과 '이상한 쪽',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 지어 바라보았다. 정상적인 것은 다수이자 메이저리티로서 사회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비정상은 소수파, 마이너리티, 무언가 방해되는 것의 속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젠 AI를 사용하는 게 정상, 사용하지 못하는 게 비정상이 됐다. AI 활용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이자 사회적 영향력을 가르는 기준이 된 것이다. 나아가 AI를 잘 활용해 내놓은 결과물이 오히려 'AI 스럽지' 않게 보이는 것도 중요해졌다. AI의 능력을 빌리되 인간 고유의 관점과 판단을 얼마나 담아내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는 AI 활용에서 중요한 원칙이다. AI 에이전트의 제안을 승인하는 것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최종 판단권마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아직은 인간을 모방하지만 AI의 판단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로 바뀌어 간다.
인간의 사유와 판단을 중시해 온 학문의 세계에서도 이런 변화는 뚜렷하다. 학설과 입장, 해외 실태와 사례 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AI 도움은 절대적이다. 인접 사회과학 분야와 달리 AI와 친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법학에서도 이젠 논문 집필이나 학술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단이 됐다. 법철학적 관점에선 학설 영역에서 AI의 역할에 주목하는 흐름이 감지된다. 앞으로 '사람이 법과 관련한 학설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문제다. AI가 학설을 만들면 인간이 어느 견해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다수설, 소수설을 형성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깊은 사유와 통찰의 결과로서 인간의 힘으로 새로운 학설을 내놓는 것은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AI는 변호사나 회계사처럼 전문지식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미 법원에도 진입했다. 형량을 정하는 양형에서 그동안 형사 법관은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논증과 결론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국민 불신이 커지면서 AI가 보완재, 대안으로 떠올랐다. 대법원은 AI 양형 시스템을 2028년 시범 운영하고 2030년 정식 운영하겠다고 지난해 밝혔다.
그러나 법의 세계에서 요구되는 것은 지식과 논리만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지혜, 때로는 공감과 덕성도 필요하다. '유토피아'를 쓴 영국의 토머스 모어와 '우신예찬'을 펴낸 네덜란드의 에라스뮈스는 인간에 주목한 르네상스 후기를 대표하는 인문주의자다. 에라스뮈스는 모어를 향한 존경과 존중의 마음을 담아 그를 "사계절의 사나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수많은 격언을 수집해 에라스뮈스가 펴낸 '격언집'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진지하면서 동시에 재미있는" 사람이어서 많은 이가 함께하고 싶어하는 인물이 "사계절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높고 고결한 인품과 덕성을 갖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AI도 언젠가 이런 '사계절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의 미위제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최근 강연에서 AI를 '세 살짜리 슈퍼맨'에 비유했다. 강력한 능력을 갖췄지만 그 힘이 가져올 피해나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석학들은 AI를 둘러싼 눈부신 기술 발전 속에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AI의 아버지'이자 '딥러닝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 등 AI 권위자 22명은 최근 논문을 통해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에서도 앤스로픽과 같은 기업은 이른바 '속도조절론'을 내세운다. AI가 인간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스스로 진화하면서 위태로운 상황이 초래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생각을 외주화하는 사람, 더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다. 필수재가 되어가는 AI는 '사계절의 사람'이 될까 '세 살배기 수퍼맨'으로 남을까. 판단이 쉽지 않다. 올해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열풍이 불었다. 영웅 오디세우스는 길고 험난한 도전과 모험의 길을 떠났다. 법과 정의의 영역에서 인간과 AI가 함께 떠나는 긴 여정, 'AI 오디세이'는 어디에 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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