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기 김포시 애기봉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접경지역에서 북한군이 122mm 자주포 진지 근무를 서고 있다./뉴시스


지난달 군사분계선(MDL) 이남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어난 지뢰 폭발로 불거진 남북 대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서한 공방으로 번졌다. 정부는 군사 채널로는 회담을, 외교 채널로는 안보리 서한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북한은 회담 제안에 침묵하고 서한에는 반박 서한으로 맞받았다. 북한군이 남쪽을 겨눈 자주포까지 최전방에 배치하면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2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주유엔 상임대표는 전날 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이 조작한 이른바 '지뢰폭발사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부국경 요새화를 '군사적 침범'으로 매도하고 지연, 저지시키기 위한 음흉한 방해책동"이라며 "조선반도 정세 악화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작극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서한은 차지훈 주유엔 한국대사가 지난 22일(현지시각) 안보리 의장국인 그리스의 주유엔대사에게 보낸 서한에 대한 맞대응이다. 차 대사는 서한에서 정전협정 위반을 지적하고 북한의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지난달 21일 우리 장병 3명이 다친 사고의 원인을 북한군이 MDL 이남에 매설한 지뢰로 지난 5일 최종 결론 내렸다.

남북의 유엔 공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차 대사가 지난 8일(현지시각) 유엔총회 제1위원회(군축·국제안보) 연설에서 이번 사고를 정전협정의 명백한 위반으로 규정하자 북한 대표는 곧바로 답변권을 행사해 한국 군부의 '서투른 술책'이라고 반발했다.

외교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군사 채널은 막혀 있다. 국방부는 지난 23일 김홍철 국방정책실장 명의로 MDL 위치 상호 확인과 군통신선 복원 등을 논의할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북측에 공식 제안했다. 지난해 11월에 이은 두 번째 제안으로 국방부는 유엔군사령부를 포함한 3자 회담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러나 북한은 응답하지 않은 채 국경선 요새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오히려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북한은 안보리 서한에서 MDL을 넘은 북한군에 대한 우리 군의 경고사격을 유엔헌장 위반으로 규정하고 자위권 행사를 경고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지난 19일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 검토를 밝힌 데 이어 21일과 22일 잇달아 가동 시점을 예고했다. 김 부장은 22일 전 국경선의 '새로운 대응수단'이 임무대기태세에 들어간다고도 밝혔다.

사흘 뒤인 25일에는 122mm로 추정되는 북한군 자주포 2대가 서부전선 최전방인 황해도 개풍군 해안가에 배치된 모습이 포착됐다. 이 자주포는 사거리가 15~24km로 경기 서북부 접경지역을 타격할 수 있다.

정부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우리 장병이 북한군 지뢰에 다쳤는데도 북한이 오히려 '자작극'을 주장하며 공세를 높이고 있어서다. 그러나 정부가 한반도 평화 기조를 내건 데다 11월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만큼 대응 수위를 높이기는 쉽지 않다. 이재명 정부는 이미 지난해 6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8월에는 시설까지 철거했다. 청와대도 사고 이후 대북 공식 메시지를 내지 않아 군 당국이 '비례적 대응'에 나설 여지가 좁다.

북한이 '자작극' 주장을 되풀이하는 데는 대남 강경 노선의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그동안 내세워 온 적대적 두 국가론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라며 "이번 지뢰 사건을 명분 삼아 국경선 요새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명예교수는 김 부장이 전면에 나선 점에 주목했다. 고 교수는 "위기 조성에 김여정이 이례적으로 너무 많이 나서고 있다. 현지 시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의도적으로 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라며 "과거에도 그랬듯 국면 전환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내외 불안 요인을 해소하려는 것인지, 북미 대화를 위한 포석인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전 이사장은 확성기로 맞받는 대신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7월 송출을 중단한 대북 라디오·TV 방송을 재개하자고 제언했다. 그는 "라디오는 북한 전역에 닿고, TV는 신의주와 원산까지 1600만명 정도가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