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치료제 '에페'가 29일 일부 의료기관 처방을 시작한다. 사진은 에페 오토인젝터주 제품 모습./한미약품


한미약품이 첫 국산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신약 '에페'를 시장에 내놓지만 분위기는 차분하다. 세계적으로 허가 사례가 많지 않은 분야에서 신약 개발을 완주했음에도 시장은 성과보다 경쟁력을 먼저 평가하는 모습이다. 국산 신약을 바라보는 기준이 개발과 허가에서 처방과 매출, 시장 지배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약품은 29일 일부 의료기관에서 에페 처방에 나선다. 지난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국산 45호 신약이자 첫 국산 GLP-1 계열 비만 신약이다. 미국과 중국, 한국 등 주요국에서 비만 적응증을 허가받은 GLP-1 계열 신약은 8개 품목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은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선점했다. 시장에서는 에페가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와 축적된 처방 경험을 넘어 의료진과 환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한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신약은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 의사의 처방 판단이 시장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국산 신약 역시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 허가 사례는 늘고 있지만 시장의 평가는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허가 자체가 성과로 받아들여졌다면 최근에는 실제 처방 규모와 매출, 글로벌 경쟁력이 더 중요한 잣대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글로벌 브랜드 대비 국산 신약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국내 소비자와 의료진의 검증 기준이 높아져 시장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신약 개발 성공과 시장 성공 사이에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고 업계는 평가한다. 국내 제약산업의 연구개발 역량은 높아졌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자리 잡은 사례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처방 경험과 브랜드 경쟁력 확보가 남은 과제로 꼽힌다.

업계는 에페가 낮은 초기 공급가와 한국인 임상 자료를 바탕으로 시장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페는 한국인 비만·과체중 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40주 시점 평균 9.02%의 체중 감소율을 기록했다. 첫 4주분 공급가는 12만9800원으로 수입 치료제 시작 용량보다 저렴하다.

정 원장은 "비만치료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기존 환자를 빼앗기보다 새 수요를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처방 과정에서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되는지가 초기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약 허가로 입증한 기술력이 곧바로 시장의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에페가 글로벌 브랜드의 벽을 넘어 실제 처방과 매출로 연결돼 국산 신약 경쟁력의 상징이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