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의 '까치'(1868~1869년, 왼쪽). 눈 덮인 울타리 문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최근 오르세 미술관의 조사에서 모네가 이 문 뒤에 그렸던 집을 지운 흔적(오른쪽)이 드러났다./오르세 미술관

왼쪽 그림의 주인공은 손톱만 하다. 클로드 모네의 '까치'다. 가로 1m30cm 작품에는 눈이 한가득 쌓였는데, 제목이 된 새는 한참을 찾아야 보인다. 왼쪽 나무 문을 보자. 사다리처럼 가로대를 댄 문의 맨 위에 까맣고 작은 것이 하나 앉아 있다. 까치다. 그런데 이 문 바로 뒤에는 원래 집(오른쪽)이 그려져 있었다.

■ 적외선에 떠오른 집
모네 100주기를 맞아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이 그림의 물감 아래를 들여다봤다. 적외선 촬영과 엑스선 형광 분석 같은 과학 조사였다. 모네는 처음에 집을 여러 채 줄지어 그리려 했다. 그러다 마음이 바뀌었다. 오르세의 회화 담당 큐레이터는 모네가 "왼쪽 집을 가리고, 그 자리를 까치가 앉아 있는 이 울타리로 바꿨다"고 설명한다. 적외선을 비춰 찍은 사진을 보면, 까치가 앉은 문 바로 뒤로 굴뚝을 단 집 한 채가 어둡게 떠오른다. 지금 그림에서는 그 자리가 하얗게 트여 있다. 그림의 구도를 크게 바꾼 흔적이 이번 조사로 드러났다. 나도 처음에는 모네가 집 위에 문을 덧그린 줄 알았다. 적외선 사진을 보니 아니었다. 집은 문 바로 뒤에 있었고, 모네는 그 집을 그냥 지웠다. 오른쪽에는 눈 덮인 나무 뒤로 붉은 굴뚝 두 개를 올린 집이 길게 누워 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이런 집이 왼쪽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모네는 왜 집을 지웠을까? 알려진 기록은 없다. 다만 그림이 말해 주는 것은 있다. 문을 다시 보자. 막혀 있지 않다. 가로대 사이로는 길이 보이고, 문 너머로는 저 멀리까지 하얀 눈밭이 이어진다. 문 너머에 집이 그대로 있었다면 우리 눈은 그 벽에서 탁 멈췄을 것이다. 그 빈 공간은 시선을 막지 않고 우리를 저 너머로 건너가게 했다.

오르세는 이 까치를 악보 위에 앉은 음표에 빗댄다. 가로대를 나란히 댄 문이 오선이라면 까치는 그 위의 음표 하나다. 모네는 집을 지우고 그 앞에 오선지 같은 문을 남겼다. 까치는 바로 그 문 위에 앉아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작은 주인공이 가장 크게 고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더 채우라 할 때 지운 화가
이런 그림은 그때 환영받지 못했다. 1869년 봄, 모네는 이 그림을 파리 살롱에 냈다. 화가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가장 큰 무대였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때 미술 아카데미는 신화와 역사의 장면을 가장 높이 쳤고, 풍경화는 한참 아래에 두었다. 게다가 살롱이 좋은 그림으로 치는 것은 붓 자국 하나 보이지 않게 매끈하게 다듬은 그림이었다. 〈까치〉의 눈밭과 울타리에는 붓질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낮게 치던 풍경화를, 그것도 살롱이 바라는 대로 다듬지 않은 채 출품했던 것이다. 관습적인 마무리를 따르지 않은 것, 대개 그것이 젊은 모네가 거듭 낙선하고 조롱받은 이유였다.

모네가 덜어낸 것은 집만이 아니다. 당시 눈 풍경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은 선배 쿠르베였다. 그는 눈 덮인 숲과 사냥 장면으로 크게 성공한 참이었다. 그런데, 모네는 숲도, 사냥도, 사람도 그리지 않았다. 문 하나와 새 한 마리, 붓 자국이 그대로 남은 눈밭만 남겼다. 살롱이 더 채우고 더 다듬으라고 할 때, 그는 오히려 덜어냈다. 150여 년 뒤, 복원가들도 덜어내는 일을 했다. 2025년 복원에서는 오래된 바니시와 예전 덧칠을 걷어냈고, 오르세의 표현대로 그림은 광채를 되찾았다. 앞쪽 눈에서 물감을 아주 조금 떼어 단면을 보니, 희게만 보이는 눈은 수많은 색 안료로 이뤄져 있었다. 모네는 '흰색'이라는 이름 하나로 눈을 덮지 않았다. 앞쪽에 길게 누운 그림자에도 회색이 아니라 푸른 빛이 돈다.

■문 위의 까치, 반가운 손님
이제 까치를 다시 보자. 집은 머무는 곳이고, 문은 누군가 드나드는 곳이다. 모네는 머무는 것을 지우고 드나드는 것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 그 문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영국에는 까치 수를 세며 점을 치는 오래된 동요가 있다. 그 첫 줄에서 까치 한 마리는 슬픔이다. 혼자 있는 까치를 불길하게 여기는 믿음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정반대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 집에 반가운 사람이 온다고 했다. 물론 모네가 그린 것은 영국 동요도 한국의 옛 믿음도 아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이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는 문 위의 까치가 무척이나 반갑다. 누군가 드나드는 문 위에서 손님을 알리는 새. 모네가 지우고 남긴 것이 바다 건너 우리 옛 믿음과 이렇게 맞물린다.

살롱에서 낙선했던 그림은 지금 관람객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 가운데 하나가 됐다. 올해 12월 5일이면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된다. 파리와 노르망디는 올 한 해 100개가 넘는 행사로 모네를 기린다. 오르세는 100주기 코스에 '까치'를 걸고, 과학 조사 영상으로 모네가 지운 집의 흔적을 보여 줬다.

서울에도 곧 첫눈이 온다. 평년 날짜는 11월 20일 무렵이다. 서울의 첫눈은 종로 송월동 서울 기상관측소에서 기상청 직원이 직접 눈으로 봐야 첫눈으로 기록된다. 올겨울 첫눈 오는 날에는 주변을 한번 보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까치〉는 지금 파리 오르세미술관 5층 모네 100주기 전시장에 걸려 있다(2027년 1월까지).
서정욱, 서정욱 갤러리 대표


서정욱 '서정욱 갤러리' 대표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디자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8년부터 갤러리 운영과 전시 기획, 미술 칼럼 및 강연을 통해 미술의 대중화에 힘써왔다. 《그림 읽어주는 시간》, 《1일 1미술 1교양》, 《나만의 도슨트, 오르세미술관》 등 다수의 미술 교양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