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왼쪽)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오른쪽)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뉴스1


"잘 계세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 접견실. 이재명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앞두고 준비된 사전환담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악수하며 안부를 물었다. 조 대법원장은 목례로 답했다.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문제를 놓고 양측이 갈등이 벌이는 가운데 마련된 자리였다. 두 사람이 웃으며 손을 맞잡은 다음날 더불어민주당은 추가 의견수렴을 이유로 헌정사상 첫 대법원장 국정조사 요구서 보고를 미뤘지만, 철회하진 않았다.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드레일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꼽았다.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해 법이 허용한 권한을 다 쓰지 않는 태도다. 1937년 대법관 증원을 밀어붙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을 멈춰 세운 것은 같은 당 의원들의 절제였다.

한국에서는 그 가드레일이 위협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7일 조 대법원장 국정조사를 결정했다. 핵심인 조 대법원장의 12·3 비상계엄 당시 행적은 내란특검이 불기소하고, 2차 종합특검이 각하한 사안이다. 대법관 후보 재제청 거부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조 대법원장도 잘한 건 아니다. 그는 청와대와의 협의 관행 대신 서면 제청을 택했고 재제청 요구를 거부했다. 국정감사에서는 증인 선서를 거부한 채 할 말만 했다. 견제는 피하면서 권한은 남김없이 쓴 셈이다.

이런 싸움에 승자는 없다. 국회가 국정조사로 대법원장을 몰아세우면 다음 권력도 같은 칼을 꺼낼 것이다. 대법원장의 버티기 역시 또 하나의 정치로 비칠 뿐이다. 대법관 공석으로 재판이 늦어지는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이다. 법원을 향한 국민의 신뢰까지 흔들릴 수 있다.

신군부 아래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에 찬성했다. 청와대와 여의도, 서초동이 되찾아야 하는 건 이런 절제다. 가드레일이 깨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이걸 막기 위해 먼저 멈추고 양보하는 쪽은 패자가 아니라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