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의 지나 히노호사 당선인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제임스 탈라리코 연방 상원의원 후보 선거 유세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뉴스1=로이터


미국 민주당의 중간선거 압승으로 국내 반도체와 전력기기, 원전·에너지 업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거점의 주지사직도 민주당이 차지한 가운데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 향후 반도체·전력기기 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한미 양국이 추진하는 대규모 발전 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선거로 공화당이 오랫동안 주지사직을 지켜온 텍사스와 조지아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텍사스에선 지나 히노호사 민주당 후보가 4선에 도전한 그레그 애벗 주지사를 꺾고 36년 만에 민주당 주지사로 당선됐다. 조지아에선 키샤 랜스 바텀스 전 애틀랜타 시장이 당선되며 민주당이 24년 만에 주지사직을 되찾게 됐다.

두 당선인 모두 선거운동 기간 AI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에 제동을 걸겠다고 강조해 왔다. 히노호사 당선인은 전력·용수 소비에 따른 주민 부담을 지적하며 주의회가 규제 법안을 마련할 때까지 신규 승인을 멈추겠다고 공약했다. 바텀스 당선인도 전기요금과 용수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볼 때까지 주 전역의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 주는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데이터센터 시장조사업체 아테리오에 따르면 가동·건설 중인 미국 데이터센터의 추정 전력 용량 30% 이상이 텍사스(24.8%)와 조지아(5.3%)에 몰려 있다. 두 주 모두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약 70%가 아직 계획 발표 단계에 있어 신규 건설 규제가 강화될 경우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센터 내 AI 가속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서버에는 범용 D램이 대량으로 탑재된다. 두 회사 모두 장기공급계약(LTA)을 통해 수요를 미리 확보해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향후 수요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신규 착공이 지연되면 고객사들이 추가 구매를 늦추거나 물량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초호황에 대응해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어 부담은 더 크다. 빅테크의 투자 속도가 당초 예상에 못 미치면 늘어난 설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투자비 회수 일정도 늦어질 수 있다.

전력기기 업계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맞물리며 북미 시장은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 등 전력기기 3사의 실적 성장을 이끌어왔다. 올해 3분기 HD현대일렉트릭의 전체 매출 가운데 북미 비중은 38%였다. 같은 기간 LS일렉트릭의 북미 매출 비중은 26.6%로 집계됐다. 효성중공업은 중공업 부문 매출의 29%를 미국에서 올렸다.

규제 불확실성에 직면한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줄이면 변압기와 배전반 등 전력설비 추가 수주가 감소할 수 있다. 이미 수주한 물량도 납품 일정이 지연돼 매출 반영 시점이 밀릴 여지가 있다. 전력기기는 제품 인도나 현장 설치를 마쳐야 수주액이 실적에 반영된다. 국내 업체들은 늘어나는 북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생산능력도 확대하고 있어 투자 셈법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원전·에너지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미 양국은 대미투자 1호 사업으로 텍사스 엔시날에 223억달러(약 30조원)를 투입해 6.5GW 규모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했다. 후속 사업으로는 최대 1200억달러(약 161조원)를 투입해 대형 원전 8기를 미국에 짓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과 원전 주기기 공급사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등은 발전소 시공 참여 기업으로 거론된다.

민주당이 상·하원을 동시 석권하면서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하면 대미투자 사업에 대한 견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청문회와 자료 요구를 통해 사업 선정 과정과 자금 집행 적정성 등을 검증하며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 이미 확정된 텍사스 가스발전 사업을 의회가 중단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개별 사업 조건이 확정되지 않은 원전 8기 건설은 후속 협의와 사업 추진 일정이 밀릴 여지가 있어 국내 기업들은 계약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