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신규 유튜브 프로그램 '대통령의 Y'를 촬영하는 모습. 5일 밤 공개됐다./사진=뉴시스(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은 인터넷 바둑 아마 5단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바둑 둘 시간도 없겠지만, 편한 자리에서 바둑 얘기가 나오면 "언제 한판 둘까요"라고 묻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변호사 시절에는 재판을 기다리며 동료 변호사들과 종종 만 원 내기 '속기 바둑'을 뒀다는데 승률이 아주 높았다고 한다. 승부를 즐기고 지는 걸 싫어하는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게임에서 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이 대통령은 지고는 못 배기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한 유튜브 프로그램에서 정치 입문 전 주식 투자로 돈을 잃었다가 끝내 복구한 얘기를 전하며 "손해 보고는 못 살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삼 이런 일화들이 떠오른 것은 "SNS 좀 그만하면 좋겠다"는 제언이 쏟아지자 이 대통령이 오히려 유튜브 직접 소통까지 들고나와서다. '대통령의 Y'라는 이름의 정기 프로그램이다. 'X'를 줄이라고 했더니 'Y'로 응수한 셈이다. X축에 Y축까지 더해 직접 소통의 그물망을 넓게 치겠다는 생각일까. 이러다 Z축까지 등장할지 모르겠다. AI를 활용한 신박한 소통 방식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 대통령은 "SNS가 없었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있었을까"라고 반문하며 소셜미디어를 자신의 '목숨줄'이자 '숨구멍'이라고 표현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숱한 정치적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동안 SNS는 기존 언론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직접 전하는 생존의 도구이자 무기였을 것이다. 지금도 국정의 무게에 짓눌리고,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시달리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낄 법도 하다.

그럼에도 '목숨줄' '숨구멍'이라는 표현은 좀 거북하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고, 끊임없이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해서다. '모두의 대통령'을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포위된 정치인의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만큼 강력한 메신저가 또 있을까. 그런 대통령이 이게 옳으니 저게 그르니 하며 논쟁에 뛰어드는 모습은 그리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말하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SNS 등 직접 소통을 놓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말하기를 좋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방식으로 살아남았고, 그 방식으로 승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말을 좀 줄이라고, SNS 좀 그만하라고 한들 먹힐 리 없다. 그게 살아 있음을 느끼는 방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왕 논쟁에 나설 바에야 묵직한 국정 현안을 놓고 제대로 했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의 모습은 그렇지도 않다.

'대통령의 Y'가 공개됐을 무렵, 세계는 미국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한 뒤의 파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블루 쓰나미'가 미국의 정치 지형은 물론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어떤 충격을 줄지 촉각을 곤두세우던 때였다.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 대통령은 어떤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는지 국민은 더 듣고 싶었을 것이다.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의 형평성 논쟁도 의미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어디 한둘인가. 더구나 대통령 자신을 둘러싼 이른바 '조작 기소' 특검 논란처럼 정작 정치적 파장이 큰 사안에는 입을 다문 채 장관 등 정책 당국자들이 챙겨야 할 듯한 이슈들을 직접 끄집어낸다. 이러니 자신에게 불리한 논란은 비켜 가면서 다른 논쟁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된다.

바둑판에서 한 집을 더 얻으려는 집념과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판단이 같을 수는 없다. 바둑에서는 한 집 차이, 반 집 차이 승부가 다반사지만 국정에서는 논쟁에서 이기려다 되레 정치적으로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정치인은 승부에서 이겨야 살아남지만, 대통령은 때로 승부를 관조할 수 있어야 나라를 움직일 수 있다.

요즘 들어 정치에도 일종의 물리(物理)가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부쩍 하게 된다. 물론 정치를 자연과학의 공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권력의 세계에도 반복되는 법칙이 있는 듯하다. 한번 형성된 권력의 관성은 쉽게 멈추지 않고, 힘을 강하게 행사할수록 저항도 커진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논쟁에서 이길수록 더 많은 논쟁에 뛰어들고, 저항이 커질수록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확신도 강해지는 역설이다. 권력의 물리학이라고 할까.

권력자의 심리(心理), 그 불안감을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권력자의 진짜 숨구멍은 자신의 말을 쏟아내는 공간이 아니라, 듣고 싶지 않은 말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 놓은 공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은 늘어나도 정치는 숨이 막힐 수 있다. 권력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정상에 올려놓은 '성공의 방정식'일 수 있다. 요즘의 조마조마한 느낌이 기우이길 바란다.


정용관 동행미디어 시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