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이 기획예산처를 상대로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3일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가 820조9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돌입했다. 최대 쟁점은 반도체 호황으로 얻을 추가 세수로 조성하는 미래대응기금이다. 이 대통령은 "이 기금은 세수변동에 대응하는 혁신적 재정안정 장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내년에도 100조 원 가까이 불어날 나랏빚은 놔둔 채 정부가 막대한 기금을 떼어내 사용하거나 운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11월 국회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미래대응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법률안'을 법제화해 162조3000억 원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고, 이 중 45조4000억 원을 내년 중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입할 계획이다. 104조3000억 원은 여유자금으로 분류, 따로 적립해 금융회사 등에 맡겨 운용하면서 나중에 세금이 덜 걷히는 경우에 대비하겠다고 한다.

가장 큰 쟁점은 반도체 세수가 급증할 내년이 재정수지를 흑자로 바꿀 드문 기회인데도,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막대한 나랏빚을 추가로 낸다는 점이다. 내년말 한국의 국가채무는 올해말보다 약 106조 원 늘어날 전망이다. 기금 여유자금 104조3000억 원에 맞먹는 금액이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뽑아 주식에 투자 하는 셈'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기금을 운용해 향후 얻는 수익률이 현재 국고채 금리 연 4%대보다 낮아진다면, 이 돈으로 나랏빚부터 갚는 게 나라 살림 전체로 봤을 때엔 이득이 된다.

과도한 정부 재량권도 문제다. 정부는 국회 의결 없이 바꿀 수 있는 기금의 주요지출 항목별 한도를 30%로 설정했다. 일반 사업성 기금의 한도 20%보다 높다. 경기하강 등 변수가 생기면 정부가 언제든지 국회의 동의 없이 지출을 최대 30%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기금운용 결정을 기획예산처 장관이 위원장인 민간 기금운용 심의회가 내리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가 기금을 '쌈짓돈'처럼 꺼내 쓰려고 할 때 브레이크를 걸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8년에는 추가 세수로 57조 원의 기금을 추가로 쌓을 수 있지만, 그 이듬해인 2029년부터 적립할 추가 세수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국회 예산정책처는 예상하고 있다. 수년 내에 '인공지능(AI) 피크아웃'이 현실화해 반도체 경기가 꺾이고 세수가 급격히 줄면 정부가 구멍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그간 쌓인 기금을 급속히 소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기능은 정부가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재정위기로 국가 신용등급 유지마저 힘겨워하는 프랑스의 현재 상황이 재정에 대한 의회의 통제력 상실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국회는 미래대응기금의 재량지출 범위를 최대한 줄이고,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 운용기구를 두게 하는 등 재정에 대한 통제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차제에 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재정준칙의 법제화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