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진, (왼쪽) 그리움, 72.7x60.6cm, 2009, oil on canvas
(오른쪽) 사랑 그리고 달콤한 사과, 53x41cm, 2009, oil on canvas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것은 생각할 줄 알고, 도구를 만들며, 이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기록과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동양사상의 시각에서 보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면서 만물의 일부분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장자(莊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물아일체(物我一體) 사상을 주장했다. 예술학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물의 모습에 화가가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모습이 곧 사물의 모습으로 표현된다는 사물과 인간의 '무경계'를 의미한다.

신영진의 작품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달콤한 사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사과가 그려진 작품만 보자면 별다른 감흥이 제공되지 않는다. 버전이 맞지 않아 읽을 수 없는 컴퓨터 기호들 속에 더 큰 사과의 환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왼쪽 그림의 옷 벗은 여인과 비교해보면 많은 의미가 발생한다. 사과와 누드의 표현방식과 의미하는 내용이 흡사하다. 사과와 옷 벗은 여인이 어떻게 같은가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화가의 눈에는 옷 벗은 여인이나 사과는 같은 개념의 사물일 뿐이다. 화가는 옷 벗은 여인을 그리더라도 어떠한 의미를 위한 부속물로서 바라본다. 만일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야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창작에 대한 의미는 사라지고 몽환적 분위기만 남게 된다.

신영진은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달콤한 사과>와 같은 작품을 통해 잘못 전달된 기호라 할지라도 소통될 수 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컴퓨터로 전달되는 문자 정보들은 높은 버전이 낮은 버전으로 읽혀지지 않는다. 어떤 정직한 정보라 할지라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전달되면 왜곡되고 변질돼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옳고 그름에 대한 현대문명의 잣대가 하향전달식이라는데 대한 일침의 역할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술작품에 나타나는 인물은 초상화가 아닌 이상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지 않는다. 옷 벗은 여인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동안 발생해 알게 된 기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