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살았던 한비자의 <외저설편>(外儲說篇)에는 '그림을 그림에 있어 누구든 보아 왔고 알고 있는 개나 말을 그리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귀신이나 도깨비는 그 형체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리기가 가장 쉽다'는 말이 나온다. 형체가 뚜렷하지 않는 것은 작자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해도 상관없지만 형체가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의식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 그림을 추상화라 말한다. 그러나 용 그림이나 전설과 신화를 그림으로 옮겨낸 것을 보고도 추상화라 하지 않듯이 보이지 않는 무엇을 그린다고 해서 무조건 추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종철, 회전, 53*45.5cm, 캔버스위에 아크릴&혼합재료, 2009

미술작품에는 형(形)이 없는 것을 그리는 것과 형이 있음에도 그대로 그리지 않는 방법도 있다. 신종철의 <회전>이라는 작품은 형이 있음에도 자의적 해석으로 표현한 경향의 작품이다. 추상화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지극히 일반적인 조형언어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우측에는 빈병이 그려져 있다. 술병으로 보이는 빈병 아래에는 작은 사람들이 앉거나 서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술이 취해 세상이 도는 듯한 기분을 제공한다. 술을 마신 사람들이 돌고 돈다. 술이 깨어도 숙취에 또다시 회전한다.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라는 노래처럼 화가는 무엇이든 돌고 돌아간다. 검은색과 흰색 물감이 캔버스 위에서 섞여 회색을 만든다. 고달픈 삶에 대한 한탄과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좌측에는 하늘이 돌고, 나무가 돌고 산이 돈다. 세상이 다 돌아간다. 화가는 회전하는 세상에 자신을 던진다. 어지럼증과 구토가 일어나도 여전히 돌고 있는 세상의 일부로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항변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이유나 조건 없이 세상살이에 대한 패배의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막막하지만 언젠가 찾아올 선구자나 삶의 해방구를 찾아 노력해 나가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