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극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은데 하물며 다섯명의 배우가 한무대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배우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을 나머지 넷에 순치시키면서도, 서로 다른 개성과의 충돌을 교묘하게 연극적 시너지로 승화시키는 테크니션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배우는 특징적인 삶에 매몰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모든 것을 던지고, 그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나간다. 텅 빈 캔버스에 들어 앉아 실존의 자신을 지우고, 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쟁이'로서의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관객과 배우 모두 찰라의 순간순간에 몰입 해야만 하는 이유다.
극단 신작로가 무대에 올린 연극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은 그런 의미에서 다섯 배우의 탄탄한 연기력이 무대 위에서 충돌 혹은 분화하며, 자칫 산만해지거나 무거워질 수 있는 스토리를 매끄럽게 풀어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한편의 소설을 읽듯 몰두하고 즐기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다섯배우의 유쾌한 입맞춤
봄기운 가득한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다섯 배우의 유쾌한 '입맞춤'이 막을 올렸다. 앤틱풍의 가구와 커다란 가죽 쇼파, 그리고 벽에 걸린 엽총… 관객들을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무대 속으로 빨아들인다. 곧바로 친구와 정치인 그 간극에 대한 충돌이 시작된다. 결코 간결한 몇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갈등구조의 서막이다.
스토리의 전개는 유쾌한 모의로 시작된다. 시장선거에 출마한 친구를 통해 통쾌한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다섯 친구들. 그러나 모의가 본격화될 수록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데….
그들 다섯은 우정과 현실의 구조적 모순에 때론 충돌하고 때론 아파하며, 거친 파열음 속에서도 '하나'라는 끈을 놓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돈, 섹스스캔들, 이념, 그리고…
제이슨 밀러 작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원제 That Championship Season)>은 1972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1973년 토니상 작품상과 연출상, 그리고 퓰리쳐상 드라마 부문상을 수상한 수준작으로, 이번 무대는 연출가 이영석에 의해 한국적 감각으로 재해석됐다.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의 어느 지방 소도시. 이제는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로 각각 이 도시의 시장, 중학교 교장, 사업가 등이 된 고등학교 시절 농구 챔피언이었던 동창생들이 코치 집에 모였다.
이들의 관심은 코앞으로 닥친 시장선거. 친구의 당선을 위해 당시 코치의 주도하에 냉혹한 선거 전략을 짜면서 점차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휘말려들게 된다. 농구게임의 공격과 방어, 반칙과 역전을 연상시키는 이들의 드라마틱한 얘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972년 초연 이후 1974년까지 총 700회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던 연극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은 미국 정치권의 부패과 비리, 그리고 야합을 비판하며 1972년 워터게이트사건 바로 직전에 공연됨으로써 이 사건을 예견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극은 시종일관 등 뒤에서 서로가 서로를 헐뜯으면서도 이합을 계속하는 등 정치가 지닌 비정함을 언뜻언뜻 내비치며,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승리'가 지녀야할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풀어내고 있다. 또 비열한 선거전을 통해 폭로되는 정치적 부패와 야합의 실상을 까발려 승리 지상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연출가 이영석.
연출의 힘, 그리고 선굵은 연기
다섯명의 우정과 배신, 그리고 화해의 드라마틱한 상황을 실타래 엮듯 흥미롭게 엮어낸 연출가 이영석은 연기 앙상블을 강하게 지향하는 연출자다. 그는 배우들의 개성과 특징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조합하고 연주하면서 배우들의 호흡을 작품의 리듬에 실어 올리고,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밀도 높은 긴장감을 적절하게 믹스해 관객들을 무대 위 배우들과 '한통속'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막 뒤의 조율사다. 그는 연극적 가상이 생생한 공연 현실이 되는 지점을 절묘하게 탐색하는 눈을 지닌 무대 위의 마에스트로이기도 하다.
이영석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 만의 탁월한 감각으로 극적 요소를 결코 두드러짐 없이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는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표작으로 <우리사이>, <블랙 버드>, <맥베스>, <어느 미국소의 일기> 등이 있다.
자극적 소재로 관객을 끌어모으는 대학로 연극판에서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남자배우 다섯'의 조합. 그러나 그들의 탄탄하고 선 굵은 연기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한순간도 방심할 여지를 주지 않는 독특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임형택, 유하복, 김승언, 고승수, 오대석 다섯명의 배우가 완벽한 연기호흡을 펼치고 있는 연극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은 한국 초연으로, 2010 서울문화재단 공연예술창작활성화 지원작이며 동아연극상 참가작이기도 하다.
5월30일(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 (070)8116-7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