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은 누드를 형식화한 고전주의적 전통을 버리고 사실적인 요소를 조각예술에 도입하면서 19세기 당시 공공 기념물의 장식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았던 조각을 독자적인 예술장르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젊은 시절 로댕은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 입학에 세번이나 실패한 말 그대로 '인정받지 못한 천재'였다.
오귀스트 로댕/청동시대(The Age of Bronze. 1876)
그런 그에게 1876년 37살에 제작된 <청동시대>는 조각가로서 명성을 본격적으로 안겨준 작품이었다.
<청동시대>는 1875년 이탈리아에서 미켈란젤로의 묶인 노예상에 깊은 감명을 받은 로댕이 귀국 후 제작한 것으로, 작품을 처음 접한 비평가들은 완벽한 사실성에 경악하면서 로댕이 인체에 직접 주물을 떠서 만들었다는 의혹과 비난을 퍼부었다. 그 뒤 파리 살롱출품에서 같은 이유로 낙선하자 로댕은 작품 모델의 누드 사진을 공개해 실제 모델보다 작품의 사이즈가 큰 것을 들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냈고, 이 일련의 스캔들을 통해 로댕은 일약 미술계의 스타가 됐다.
로댕은 인간의 내부 감정이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포즈를 드러내기 위해 전문 모델의 상투적인 포즈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는 격정적이고 순간적인 제스처를 얻어내기 위해 캉캉 댄서를 고용해서 작업실 안을 돌아다니게 했고, 그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모든 움직임을 포착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인체의 움직임을 통해 감정을 담아내려 애썼는데, 어느 날 그의 동거녀였던 카미유 클로델이 작업실로 쳐들어와 고함을 지르면서 돌아다니자 로댕은 그녀를 달래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점토로 그녀의 성난 얼굴을 포착해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비평가들은 한때 그들이 비난했던 로댕 조각의 심리적 복잡성과 강렬한 감정의 분출에 대해 열렬히 찬양하기 시작하면서 1900년부터 그는 위대한 조각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됐고, 그 명성에 걸맞은 걸작인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들> <발자크> 등을 제작하며 명실공히 근대조각의 시작을 알린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 이번 호부터 국내외 명작을 소개하는 '뮤움 명작 갤러리'가 연재됩니다. 뮤움닷컴은 국내 유일의 미술전문포털사이트로 미술아카이브 구축을 통해 일반인들의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한편, 보다 친근하게 미술에 접근할 수 있는 열린 미술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미술정보 사이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