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가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것은 2006년이었다. 2006~2009년 BT의 연평균매출성장률(CAGR)은 4% 수준에 이르렀다. 실적개선의 원동력은 개인가입자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기업체와 정부를 대상으로 토털 IT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BT는 2003년 영국 보건부의 국가보건의료 정보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 국립의료원(NHS)에 등록된 7000만명의 환자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광대역전송망을 통해 130만명의 NHS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업비는 무려 3조6000억원.
NHS 프로젝트는 시작에 불과했다. 뒤이어 로이터통신 정보화 프로젝트(2조5660억원), 국방부 정보화사업(2조5660억원), 글로벌기업 유니레버 IT솔루션사업(1조1460억원), 바클레이은행 정보화사업(8550억원) 등 대형 프로젝트들이 뒤를 이었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통신담당)는 "2000년대는 B2B와 B2G사업이 BT와 영국 통신업종의 가장 큰 이슈였던 기간"이라며 "B2B, B2G 수주액 증가는 BT의 주가 상승을 이끌어 2005~2007년 BT는 50% 이상 주가가 뛰었다"고 말했다.
◇'공짜폰' '현금보조금'에 멍든 IT KOREA
국내 통신기업들을 보면 2000년대 초반의 BT가 처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BT가 기존 유선사업에 매달렸던 것처럼 우리 통신기업들은 휴대전화사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살 깎아먹기식' 가입자 유치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것도 똑같다.
세계 최고의 IT강국이라고 불리던 우리나라가 무선인터넷 분야에서는 G20 국가 가운데 가장 낙후됐다는 통계도 있다. 글로벌 모바일시장에서 더 이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이면에 바로 이 같은 '화석화된 공룡' 통신기업들의 부진이 자리잡고 있다.
주가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 IMT-2000 서비스와 초고속인터넷망이 본격적으로 깔릴 당시 KT의 주가는 20만원을 넘볼 정도였다. SK텔레콤은 40만원대를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KT의 주가는 5만원, SK텔레콤은 15만원대에 불과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CIT KOREA'를 모토로 내걸었다. 통신산업과 기타 산업의 융합(Convergence)인 컨버전스IT(CIT)를 통해 통신기업들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간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도시철도공사가 도입한 ST&F 시스템이 CIT의 대표 사례다. 지하철역의 각종 기기들에 고장이 났을 경우 역사 안의 와이브로망을 통해 자동으로 담당직원의 스마트폰으로 연락이 가고, 담당직원 역시 기기 수리에 필요한 각종 결재를 스마트폰으로 현장에서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투자자금이다. '공짜폰'과 '보조금'으로 대변되는 마케팅 경쟁으로 통신기업들은 CIT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막대한 투자자금을 감당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 국내 통신기업들의 매출 대비 마케팅 비용은 28~30% 수준으로 세계 통신기업 평균 16%를 한참 넘어선다.
◇마케팅비 규제안 통신주 재도약 날개되나
방통위에서 빼든 규제의 칼은 '마케팅비 규제안'이다. 방통위와 통신 3사는 지난 3월 ▲마케팅 비용을 유선과 무선 각각 서비스매출액 대비 20%(2010년은 22%) 수준으로 낮추고 ▲축소되는 마케팅비용을 R&D와 투자 등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마케팅비 준수 가이드라인'을 합의한 바 있다.
정부는 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연간 1조원 가까운 마케팅비가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기업들이 투자 여력을 확충한 만큼 컨버전스IT를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통신담당)는 "마케팅 비용 상한제는 CIT KOREA 구현을 위한 출발점"이라며 "CIT KOREA의 핵심인 B2B, B2G 사업은 통신업종의 새로운 성장 사이클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재경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마케팅비 가이드라인 확정으로 마케팅비 감소, 이익증가, 신규 투자, 신규 매출 증가의 산업 선순환 구조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김동준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마케팅비 한도 설정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업종 최대 디스카운트 요인이었던 마케팅비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다른 해석도 있다. 김홍식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광고선전비 개통수수료 유지보수 수수료 등이 마케팅비용에서 제외되고 타 사업부문 교차 지원비가 인정돼 마케팅비용의 감소폭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홍식 애널리스트는 "이들 항목을 제외하면 서비스 매출액 대비 마케팅비용 비중이 2008년 기준 KT가 9.2%, SK브로드밴드가 16.4%에 불과하다"며 "따라서 마케팅비용을 감축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이동통신부문으로 마케팅비용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김회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통신업체들의 재무제표가 합병과 K-IFRS 도입 등으로 지난해와 올해 수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이 같은 효과를 배제하고 다시 계산한 결과 마케팅비 절감액은 50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케팅비 규제안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지금 여의도 증권가는 정부정책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통신기업들의 주가는 정부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1999년1월~2000년1월 KT의 주가는 기존 5만원에서 10만원대 후반까지 상승했다. SK텔레콤은 50만원대까지 올랐다.
이 같은 폭발적인 주가 움직임은 2000년대 초반 정부가 'IT KOREA'를 내걸고 IMT-2000과 초고속통신망 투자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CIT KOREA'가 과연 통신기업들의 새로운 성장동력과 주가 상승 모멘텀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