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대표적 작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76)는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주제를 가지고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1848년 당시 유행하던 로열 아카데미 화풍에 반발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화가 라파엘 이전의 미술경향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했던 영국의 젊은 작가들은 문학적 스토리에 낭만적 서정과 중세적 신비로움을 담아낸 그림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셰익스피어 비극은 최고의 주제였으며, 특히 비극적인 로맨스를 그린 햄릿은 예술적 영감을 제공해 주는 훌륭한 주제였다.
밀레이가 로맨틱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상실감에 빠진 오필리아를 주제로 그림을 그린 유일한 작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밀레이의 작품 속의 오필리아가 우리에게 가장 인상 깊은 이미지로 남아있게 됐을까?
아마도 그녀의 순수하면서도 연약한 성격을 잘 나타내는 표정과 몸짓의 몽환적면서 사실적인 아름다움에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의 모델인 엘리자베스 시델(Elizabeth Siddal)은 라파엘 전파 작가들의 예술적 뮤즈(Muse)였고, 시델 역시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인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실제로 익사한 사람을 본 적이 없는 밀레이는 시델을 4개월 동안 욕조 안에서 포즈를 취하게 했다고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꽃과 식물은 문학 작품 속의 단어처럼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밀레이는 만개한 꽃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 다섯달이 넘는 기간 동안 이스트 런던 호크니지역의 강가에서 세밀하게 관찰하고 스케치를 했다. 오필리아의 뺨과 드레스 등의 장미는 오빠가 그녀를 5월의 장미(Rose of May)라고 부르던 것을 암시한다. 또 목 주위의 제비꽃은 신의, 순결 등을 의미하고 팬지는 허무한 사랑을 알려주며, 수선화는 깨진 희망을 상징한다. 강가에 핀 양귀비는 깊은 수면상태, 더 나아가 죽음을 의미하며, '나를 잊지 말라'는 꽃말의 물망초가 물 위에 떠서 오필리아의 작은 바람을 담고 있다.
꽃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해 의미를 둔 밀레이의 문학적 상상력은 라파엘 전파의 성향과 역량을 잘 나타내 준다. 오필리아의 비극적 사랑과 순수성, 그리고 이중성은 이후 대중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