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사진작가 최진연의 삶과 일
소외된 역사와 나눈 20년 사랑
켜켜이 쌓인 성벽의 세월 오롯이 담아내다
남한산성 하면 많은 사람들은 병자호란 치욕의 역사를 떠올린다. 그로 인해 신라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얼을 함께 해온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여기 "남한산성이 치욕의 장소라니요? 조선이 청에 머리를 숙였을지언정, 남한산성은 무너지지 않았잖아요?"라며 남한산성과의 첫 만남에서 사랑에 빠져 성벽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사진작가가 있다. 최진연 씨다.
남한산성은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시절 축성되어 130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역사와 민족의 얼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조선왕조 시대에는 선조 때부터 순조에 이르기 까지 군사 요충지로 자리매김했으며, 인조 때에는 항전의 역사를 간직한 중심지이기도 하다. 남한산성은 12km를 통틀어 기단석이 무너진 곳이 없으며, 곳곳에 문화유산들이 자리하고 있어 최근 들어 역사적 가치를 다시 인정받고 있다.
이야기 속 풍경에 매료
최진연 씨가 처음 남한산성에 오른 것은 20대 후반, 이미 옛것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문화유적 전문가로 일하던 1981년 2월이었다. 친한 벗과 함께 나들이 삼아 가볍게 운동화를 신고 눈 덮인 산을 올랐던 것이 엊그제 같다는 그는 당시 동행했던 친구가 구두를 신은 탓에 눈길에 자꾸만 미끄러지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최씨가 당시 마주한 남한산성은 산 속 마을을 감싸고 이어진 성벽이 마치 조부모님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산성의 매력에 빠져 그 자리에서 산성을 테마로 삼아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 결심 후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남한산성에 올라 한컷 한컷 소중한 보물을 만들어갔다.
비웃음 사도 좋았다
그가 남한산성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에 한창 매진한 시기는 80년대 후반이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짬이 날 때마다 이어졌고, 산성에 오른 긴 시간만큼 복원 전후 모습이 고스란히 그의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남았다. 그리고 그 사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의 남한산성 사진전을 통해 사람들에게 산성의 아름다움을 각인시키기도 했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돈벌이 안하고 성벽사진이나 찍는 미친 짓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남한산성을 찍기 위해 국내 최초로 헬기에 탑승해 3000피트 상공에서 로프에 의지해 남한산성의 웅장함을 담아내다보니 그동안 받아온 비웃음이 한순간에 씻겨나갔다.
한마리 용이 꿈틀대는 듯 한 남한산성의 웅장함은 얼마 전 발간 된 그의 사진에세이집 <우리 터, 우리 혼 남한산성>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남한산성 구석구석의 유적지를 세월의 흔적을 통해 담은 것 뿐 아니라, 그가 밟아 온 길을 유적지를 따라 얽힌 민족의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있는데, 그가 처음 남한산성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조부모님 이야기 속 모습을 담은 듯 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
최씨는 매일 체력단련을 위해 1시간 넘게 등산을 한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남한산성과 함께 하며, 최고의 시간에 아름다운 성벽의 모습을 담아 낼 수 있었던 숨은 노력 중 하나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그동안 병자호란 치욕의 역사로 기억되어 온 남한산성을 달리 보는 이들이 생겼고, 작품 활동을 시작할 당시 홀로 길을 내며 떠났던 산성의 여정을 이제는 300명 남짓한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과 함께 하곤 한다.
2010년 1월,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신청이 완료되며, 최씨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더 많은 옛 것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또 다시 분주해진 그는 다른 테마를 준비 중이라고 귀뜸했다. 삼국시대 고성의 모습을 정성스레 렌즈에 담은 그의 새로운 테마 '보물'들을 조만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최진연 씨가 추천하는 남한산성 길>
최진연 씨는 동문(좌익문)에서 동장대, 남문(지화문)에서 동문(좌익문)까지 걷는 두개의 코스를 추천했다. 피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된 '좌익문'에서 시작해 황진이의 일화로 유명한 '송암정'을 지나 병자호란의 격전지였던 '동성포루'와 '장경사'를 거쳐, 별에 가까운 동장대에 이르는 길은 약 1시간이면 걷기에 충분하다.
'지화문'에서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직접 전투를 지휘한 '수어장대'를 지나 '서문'과 '북문', '동장대'를 거쳐 '좌익문'까지 이르는 길은 남한산성을 걷는 코스 중 가장 긴 코스로 알려져 있다. 약 3시간 30분이면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남한산성을 에둘러 볼 수 있다.
남한산성의 위용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성벽 안에서 걷는 것보다 성벽 밖으로 걷는 것이 좋다. 남한산성도립공원 홈페이지(www.namhansansung.or.kr)에서 등산로 코스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남한산성 관리사무소(031-743-6610)에서 산성 지도를 얻을 수 있으니 미리확인 해 두자. 올 방학 산성에 올라 시원한 바람과 함께 조상의 얼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정영은 대학생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