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열풍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보이차는 이제 우리가 아는 음료로서의 ‘마시는 차(茶)’에서 멀찌감치 빗겨나 있는 듯 보인다. 바야흐로 보이차는 무병장수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강박, 병리적 욕망이 만들어낸 불로불사의 약초이고, 보석이 박힌 코끼리의 상아나 마케도니아의 주화처럼 가진 자들의 수집목록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보이차는 중국 보이현에서 판매하는 녹차의 한가지다. 다만 이 녹차가 긴압한 형태(찻잎에 수분을 가해 부드럽게 만든 후 압착한 것)라는 점에서 여타 녹차와 다르다. 외갓집 처마에 매달린 메주를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 이 긴압한 녹차인 보이차가 시간이 경과하면서 공기 중 미생물과 결합해 숙성 혹은 발효되고, 결국 흑차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그런데 이 숙성이라는 지점, 숙성기간이라는 ‘절대시간’은 무게나 크기로 잴 수 없는 것이기에, 왕왕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인위적인 숙성(‘악퇴’라든가 ‘습창’이라 부르는)을 거친 '어제 만든' 보이차가, 오십년 또는 백년 된 보이차로 둔갑하는 경우, 몇년 전 문제가 됐던 ‘돼지우리에서 썩힌 보이차’가 유명한 예가 되겠다. 이 같은 가짜 보이차들은 유명 보이차창(공장)이나 보이차에 관한 권위자의 이름을 사칭하기도 하고, 빈티지 효과를 내기 위해 일부러 낡게 포장해  ‘절대시간’의 흔적만을 그럴싸하게 흉내 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보이차의 맛과 향이 진짜 보이차의 맛과 향이 돼 버젓이 명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오래 묵었다는 보이차일수록 열에 아홉은 가짜이기에, 진짜인 하나를 맛 본 어떤 운 좋은 사람이, 가짜인 아홉을 맛 본 여러 명을 당해낼 수 없는 법. 쾌쾌한 냄새를 맡으며 짐짓 ‘시간의 향기’라면서 감동하는 그들은, 썩은 짚단을 우려 낸 듯한 맛을 두고 “건강해 질 거야, 암, 그렇고말고”라며 자신에게 확신을 심기에 바쁘다. 


믿음만이 그대를 구원할지니. ‘마시는 차(茶)’인 보이차의 예사로운 맛을 알지 못하기에, 이제 보이차는 불로불사의 욕망이 투영된, 보이차를 맹신하는 자들의 ‘토템’이 되버린 것이다.

이 같은 ‘토템’ 보이차는 다시 수집가의 눈앞에선 반짝반짝 빛나는 'must have' 수집품목이 돼 수집가의 진열장, 기념품 머그 옆에 나란히 진열된다. 이때의 보이차 또한 ‘마시는 차(茶)’로서의 보이차가 아니요, 필립 블롬의 말을 빌어 “무슨 약속을 담고 있느냐”가 가치평가에 주요 기준이 된다. 가령 A라는 보이차에 담긴 특별하거나 기괴한 역사(가령 청조 건륭제가 먹다만 보이차(?) 따위), 만든 이의 유명세, 한정성(limited edition), 무엇보다도 보이차 포장지에 표기된 해독 불가능한 이국의 문자와 숫자들, 그것은 마치 중국 고대의 갑골문자판과 같은 포장딱지로 얼마나 수집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가.
 
“믿고 마실 수 있는 보이차가 없다”는 볼멘소리를 때때로 듣는다. 그렇지만 이제 내 귀엔 그 소리가 “ 믿고 싶은 보이차가 없다”로 들린다. 믿고 마실 수 있는 보이차는 있지만, 우리의 눈과 마음은 ‘토템’이나 ‘수집품’과 같은 믿고 싶은 보이차를 찾고 있기 때문. '믿고 싶은 보이차'를 찾는 이들에겐 그들의 믿음, 그들의 욕망을 훔쳐 고가에 되파는 부도덕한 거간꾼들만이 원하는 보이차를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보이차는 ‘마시는 차(茶)’로서의 보이차가 아닌 욕망이 빚은 환상으로 극진히 소비되고 있을 테다.

Daily Tea Tonic 사루비아다방(www.salviatearo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