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먼 섬이다. 우리나라 육지의 끝이라는 해남 땅끝, 거기서도 배를 타고 한참을 더 가야 발을 디딜 수 있는 섬, 보길도. 그렇지만 자연 풍광이 빼어난 이 섬은 조선시대 이름 날리던 시인 고산 윤선도가 은둔해 <어부사시사>를 지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 보길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요 시인인 고산과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섬이다. 정치적으로 열세에 있던 남인가문에 태어난 고산은 꼿꼿한 성품으로 집권세력인 서인에 맞섰던 인물. 특히 서인의 우두머리인 송시열과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탓에 일생 중 20여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만 했다.
 

세연정 전경.

◆고산이 <어부사시사> 지은 세연정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해남에 내려와 있던 고산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가솔 수백명을 모아 배를 타고 강화도로 향한다. 그러나 도중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겠다고 결심하곤 이듬해인 1637년 은둔지를 찾아 나섰다. 목적지는 제주도였다. 그렇지만 도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우연히 보길도에 정박한 고산은 섬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보길도에 정착하게 된다.

고산은 보길도 중앙의 너른 골짜기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격자봉(格紫峰) 아래 집을 지어 낙서재(樂書齋)라 하였다. 그렇지만 정치 상황은 고산이 은둔하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고산은 병자호란 때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다시 영덕으로 유배를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2년의 유배 끝에 낙향한 고산은 부용동으로 들어와 정자와 누각을 세우고 본격적인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고산은 85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일곱차례나 보길도를 드나들면서 총 13년을 이곳에 머물렀다.

조선시대 불후의 명곡으로 여겨지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는 고산이 65세 되던 해인 1651년 보길도에서 지은 시다. 봄노래(春詞), 여름노래(夏詞), 가을노래(秋詞), 겨울노래(冬詞)로 나뉘어 각각 10수씩 모두 40수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우리말이 지닌 묘미를 한껏 살린 명작으로 꼽힌다.
 
앞 개에 안개가 걷히고 뒷산에는 해 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썰물은 거의 나가고 밀물이 밀려온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강촌의 온갖 꽃이 먼빛이 더욱 좋아라.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중에서 
 
 

세연정을 찾은 사람들.


세연정 동백.

예전엔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선착장에서 보길도 청별항으로 직접 배가 운항했으나, 보길도와 노화도를 잇는 보길대교가 놓인 요즘엔 보통 노화도의 산양항까지만 간다. 이 배에는 차량도 실을 수 있다. 이렇게 산양항에 내려 승용차로 10여분 달려 보길대교를 건너면 보길도로 들어서게 된다.

보길도 관광의 중심지는 부용동이다. 보길도 최고봉인 격자봉(433m)을 비롯해 망월봉(364m), 광대봉(310m)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산줄기에 감싸인 부용동은 한송이 연꽃의 형국이다. 부용동 초입에 위치한 세연정(洗然亭)은 고산이 경영하던 별서정원. 세연(洗然)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하다’는 뜻이다.

정자는 계류를 막아 만든 세연지와 회수담 두 연못 사이에 있고, 연못 주변으로는 대나무, 아름드리 동백나무, 소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연못은 흐르는 물을 막은 판석보(일명 굴뚝다리)가 절묘하게 수위 조절을 해주는 덕에 수위가 늘 일정하다. 고산은 이곳에서 뱃놀이를 하며 <어부사시사>를 짓고 노래했다.

세연정 산책은 천천히 한바퀴 도는 데 채 10분도 안 걸리지만 기분은 참 상쾌해진다.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피고 지는 정자 주변의 동백꽃은 세연정을 찾은 이들에게 자연이 주는 선물. 연못 안의 잘 생긴 일곱개의 바위를 일컫는 칠암 구경도 좋다. 이렇게 거닐다 정자 난간에 기대 가만 귀 기울이면 동백숲 너머 어디선가 어부의 뱃노래가 들려올 것만 같다.

세연정 옆에 위치한 보길초등학교 건너편에는 윤선도문학체험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는 고산의 <어부사시사> 40편의 시를 한편씩 써넣은 안내판들이 산책로를 따라 세워져 있어 시를 음미하며 걷는 맛이 좋다.
 

곡수당
 

윤선도문학공원
 
◆동천석실에서의 부용동 조망은 일품

고산이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자랑했던 동천석실(洞天石室)은 세연정에서 상류의 부용동 쪽으로 1.5km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 산비탈에 있다. 동천석실 입구에 주차를 하고, 동백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 짙은 난대림 오솔길을 5~10분 정도 걸어 오르면 동천석실에 닿는다.

이곳에는 한칸짜리 정자가 위쪽과 아래쪽에 두동 자리하고 있는데, 위쪽 정자 앞의 반석은 고산이 다도(茶道)를 즐기던 흔적이다. 정자 주변에는 석문(石門)·석담(石潭)·석천(石泉)·석폭(石瀑)·석대(石臺)·희황교(羲皇橋)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가파른 산비탈 바위를 끼고 자리한 위치가 절묘하다.

무엇보다 고산의 자랑대로 정자에서 바라보는 부용동 조망은 과연 일품이다. 격자봉에서 흘러내리는 산줄기가 연꽃처럼 둘러싸고 있는 부용동 중심에는 고산이 처음 보길도에 들어와 자리 잡은 주거 공간인 낙서재, 고산의 아들 학관이 머물던 곡수당 등이 먼빛으로 내려다보이는데, 한참을 앉아있어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조망이다. 부용동 방문길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대상지가 아닐 수 없다.
 

여행수첩

●교통 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2번 국도(영암·해남·진도 방면)→영산호하굿둑→성전→13번 국도(해남 방면)→해남(완도 방면)→13번 국도→초호 삼거리(우회전)→806번 지방도(송호해수욕장 방면)→77번 국도(땅끝해안로)→땅끝마을선착장 <수도권 기준 6시간 소요>

●배편 땅끝마을선착장→노화·보길도(산양항)=매일 14회(07:00, 08:00, 09:00, 09:40, 10:00, 11:00, 12:00, 13:00, 13:40, 14:00, 15:00, 16:00, 16:50, 17:40) 운항. 땅끝마을선착장으로 나오는 배편도 산양항에서 같은 시각에 있다. 배편은 현지 상황에 따라 결항 및 변경될 수 있으니 사전에 문의 필수. 편도 어른 5700원, 승용차(운전자 1인 포함) 1만6000원.

●숙식 보길도 면사무소가 있는 청별항 주변과 보길대교 북쪽의 노화도 읍사무소 주변에 횟집, 일반식당, 가게 등이 많다. 숙박은 깨끗한 숙박업소가 많은 보길도 남동쪽의 예송리해수욕장 주변에서 하는 게 무난하다. 낙원펜션(061-554-9624), 황토한옥펜션안집(061-553-6370), 갯돌사랑(061-553-6460), 보길도푸른민박(061-553-5245) 등이 있다. 비수기인 요즘은 작은방이 3만원 내외.

●참조 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50-5421, 땅끝선착장 매표소 061-535-4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