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뇌관' 제거 취지 불구, '모럴 해저드' 등 부작용 우려

'연체자가 행복해지는 이상한 나라?' 새 정부의 고강도 가계부채대책인 '국민행복기금'이 시작부터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곪은 환부'를 도려내는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배째라'식 악성채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엇갈린다. 진정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기금이 될지, 성실한 국민들의 속을 터지게 하는 불행기금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_뉴스1 이광호 기자

◆ 대선공약의 '10분의 1'로 지원축소…실효성 "글쎄"

전국은행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월까지 등록된 채무불이행자(구 신용불량자) 수는 약 123만9188명에 달한다. 이들이 우리나라 가계부채 1006조원 가운데 16%에 달하는 157조8375억원을 떠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채무불이행자의 빚을 덜어주겠다"고 공약한 것은 이 같은 가계부채의 뇌관을 제거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장기연체 채무자를 집중 지원해 신용회복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기연체자를 지원하는 것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에도 득이 된다는 논리다. 이에 국민행복기금은 지난 2월 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자를 채무조정 대상으로 최대 70%까지 빚을 줄여주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대부업체에 연체채무가 있는 134만명 중 15.7%에 해당하는 약 21만명이 신청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공적 자산관리회사 연체채무자(211만명) 중에서는 11만4000명이 신청할 것으로 예측했다. 약 32만여명이 국민행복기금의 수혜자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국민행복기금에 참여하는 금융회사·대부업체는 3월25일 기준 3894개에 이른다. 업권별로 보면 수협과 산림조합, 생명보험, 새마을금고는 모든 회사가 참여한다. 이외의 금융권 참여비율은 저축은행 99%, 신협 96%, 농협·손해보험 94%, 여신전문금융사 87%, 은행 67% 등이다.

기존의 채무조정제도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신용회복기금과 성격은 비슷하지만, 협약 금융회사가 18배에 달하고 채무조정 조건도 대폭 완화된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대선 당시 공약에 비해 '용두사미'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기금 규모와 대상자수가 공약의 10분의 1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대선 당시 공약에서 약속했던 18조원 규모가 아닌 1조5000억원 규모로 축소됐고, 322만명에게 주겠다는 혜택은 32만명으로 줄었다.

부채전문 재무설계업체인 '희망 만드는 사람들'의 서경준 부장은 "국민행복기금은 과거 카드사태 이후 등장한 2004년의 신용회복 지원프로그램 '한마음금융'의 희망모아와 유사한 성격인데, 당시 50만명을 지원했어도 가계부채의 뇌관이 제거된 것이 아니라 더욱 심화됐다"며 "이번에는 대상자수도 더 적은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채무불이행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부업 채무가 사실상 제외됐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행복기금에는 대부업체의 경우 9170여개에 달하는 등록대부업체 중 대부금융협회에 가입된 54개 회사만 참여한다. 박종호 금융소비자협회 선임연구원은 "고금리 부채의 대부분이 대부업 대출임에도 국민행복기금 협약에 가입된 대부업체는 전체 등록대부업체 중에서 1%도 되지 않아 고금리 대부업에 대한 조정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성실 채무자만 바보되나?" 도덕적 해이 논란

"대출금 잘 갚으면 바보가 되고, 대출금 연체하면 행복해지는 이상한 나라." "빠듯한 생활에도 연체 없이 대출 잘 갚고 있는 나는 등신이다."

국민행복기금을 두고 반(反) 국민정서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빚을 안 갚고 버티면 나라에서 갚아줄 텐데'라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위원회 등은 이러한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지원은 "단 1회에 한한다"고 못 박았다. 또한 채무조정 약정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채무조정을 무효화하기로 했다. 또한 은닉 재산이 발견되면 채무조정 약정을 무효로 하고 해당 재산을 압류해 빚을 갚는 데 먼저 쓰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확실한 '안전핀'이 될지는 미지수다. 벌써부터 "지금 당장은 대상이 안되더라도 언젠가는 받을 수 있겠지"라는 기대심리가 채무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것이다. 서경준 부장은 "국민행복기금 설립 발표 이후 본인이 대상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도 빚을 악착같이 갚으려는 마음이 없어진 채무자가 상당수"라고 전했다.

또한 채무조정 약정을 지키지 않거나, 숨긴 재산이 발견되면 혜택을 '취소'하는 것이 강력한 벌칙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체계적인 신용정보 공유를 통해 감독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실장(선임연구위원)은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신용정보 공유체계를 긴밀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빠듯한 살림에도 빚을 꼬박꼬박 갚아온 성실 상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남아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저소득층 가계부채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 가운데 금융대출이 있는 가구는 156만4000가구다. 이중 최근 1년간 연체 경험이 있는 가구는 49만7000가구다.

주목할 것은 연체하지 않은 나머지 106만7000가구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연체 경험이 없는 저소득층 가구의 월 원리금 상환액은 71만8000원인데, 가처분소득은 72만3000원에 불과해 연체 가구로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잠재적 채무불이행 위험군에 대한 지원이 필요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들은 연체가 없다는 이유로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채무불이행자들에 대한 지원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성실하게 상환해온 채무자들은 좋은 신용을 유지하고 있겠지만, 6개월 이상 장기연체자들은 채무불이행 상태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적지 않은 패널티를 받고 있다"며 "채무불이행자들이 재기하는 게 사회에도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지원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