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캐나다 최대 연기금운용사인 CDPQ의 마이클 사비아 최고경영자는 "채권의 파티는 끝났다"고 말했다. 당시 사비아 CEO는 "최근 3~5년 동안 채권에서 올린 수익률은 거의 주식을 보는 것처럼 놀라웠다"면서 "이제는 이런 파티가 끝났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전망은 세계적으로 비슷했다. 글로벌시장의 기관과 연기금들은 올해 채권투자 비중을 축소하고 주식 비중을 확대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시장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연초 이후 펀드들의 설정액 증감상황을 살펴보면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채권형펀드로 꾸준히 돈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5월29일 기준으로 연초 이후 돈이 가장 많이 유입된 것은 MMF(머니마켓펀드)다. 총 8조8974억원이 순유입됐다. 두번째로 많은 것이 바로 해외채권형펀드로 총 2조7000억원이 순유입됐으며, 국내혼합형과 해외혼합형에도 각각 1조3341억원, 1조820억원이 순유입됐다. 반면 국내주식형에는 9601억원, 국내채권형에는 5953억원만 유입돼 가장 적은 돈이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1개월간의 동향이다. 국내주식형펀드에서 8291억원이 빠져나가는 동안 국내채권형펀드에는 5334억원이 순유입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같은 기간 해외채권형펀드에도 6125억원의 자금 유입세를 기록했다. 개별 펀드로 눈을 돌리면 우리자산운용의 '우리파이어니어증권자투자신탁 1[채권]C1'에는 올해 들어 자금이 1035억원이나 순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시장은 채권에서 벗어나 주식으로 투자의 니즈를 변경하고 있는데, 어째서 한국에서는 채권이 잘 나가는 것일까.
◆수급 여건의 개선, 그리고 환율
해외 전망과 달리 국내에서 채권의 관심이 줄어들지 않는 원인에 대해 증권업계에서는 수급여건이 좋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정보팀 이사는 국내 수급여건이 개선된 이유에 대해 ▲해외 투자기관 자금의 지속적인 유입 ▲설비 투자 및 부동산 경기침체 지속 등의 국내 요인 ▲경제구조 전환에 따른 안전자산 수요 급증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오 이사는 "경기 순환적인 원인과 함께 정책 변수와 국내 구조적인 부분에 따른 문제가 결부돼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전반적으로 채권 수요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더불어 오 이사는 환율의 영향도 크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직접적으로 해외 투자기관 자금의 유입은 '내외금리차'와 여전히 평가절하돼 있는 달러/원 환율에 기인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자산의 명목가치가 내재가치보다 할인돼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투자자의 수요가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오 이사는 "특히 달러/엔 환율이 급등하면서 재정환율인 엔/원 환율의 대응이 불가능하다"며 "당국으로서는 달러/원 환율을 달러/엔 환율의 등락에 연동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달러/원 환율의 저평가 상태가 지속될 것이며 원화채권의 투자 매력도를 유지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채권, 계속 투자해도 될까
그러나 문제는 채권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지만, 당초 예상됐던 것처럼 채권투자의 파국이 찾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의 국고채 금리가 급등(채권수익률 하락)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진 상태다.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미국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달 초 연 1.63%에서 5월28일(현지시간) 연 2.16%로 0.53%포인트 올랐다. 일본 역시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저가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하면서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일본 10년물 금리는 이달 초 연 0.60%에서 이날 0.93%로 상승했다.
국내 채권금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29일 국내 채권금리는 폭등했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국고채 3년물은 전거래일대비 0.11%포인트 오른 2.75%로 마감했다. 국고 5년물은 0.12%포인트 오른 2.85%, 10년물은 0.10%포인트 상승한 3.04%, 20년물과 30년물은 각각 0.09%포인트씩 뛴 3.21%, 3.30%로 거래를 마쳤다.
통안증권 91일물도 0.06%포인트 상승한 2.62%를 기록했고 1년물은 0.08%포인트 오른 2.66%, 2년물은 0.09%포인트 상승한 2.73%로 마감했다. 회사채 AA-(무보증 3년)와 BBB-(무보증 3년)는 각각 0.11%포인트씩 뛴 3.12%, 8.75%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채권금리의 상승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지표가 확연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 대도시의 주택가격이 14개월 연속 상승하는 등 차분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국채 매입규모를 줄여 돈을 푸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 또한 이러한 호전되는 지표와 맥락을 같이 한다.
김지만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경제가 개선추세를 꾸준히 이어간다면 조기 출구전략이 현실화될 것이므로 미국채 금리는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 애널리스트는 "다만 미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미국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므로 향후 연준 위원들의 발언 수위는 조절될 것이며 미국채 금리 상승속도도 조절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당분간) 변동성이 확대되는 국면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한국 채권시장의 경우 미국 이슈도 있지만 국내 펀더멘털에도 집중해야한다는 분석이다.
전소영 한양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 채권시장에는 미국의 출구전략이 여러 가지로 우호적이지 않다"면서 "한국보다 먼저 미국이 유동성을 흡수하고 금리상승으로 연결된다면 이론적으로는 내외금리차가 축소되면서 한국시장에서 자금 이탈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애널리스트는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의 펀더멘털과 금융시장 흐름이 국내시장과 디커플링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경기회복 모습이 소비회복에 따른 것이 아닌 수출회복에 의한 것일 경우 반드시 한국의 경기회복으로 이어진다는 연결고리가 약해질 수 있다"면서 "현재 미국의 주택시장이 회복하고 있고 GDP에서의 민간 기여도가 증가하고 있지만 소비의 점진적 회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고용의 증가가 필수적인데, 현 상황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는 "따라서 미국 이슈보다는 국내 펀더멘털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의 펀더멘털은 글로벌경기 회복보다는 엔화약세에 따른 국내 수출기업의 부진으로 인한 성장 둔화와 부동산시장 침체의 장기화 및 내수 부진에 따른 영향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추경 편성이 경기회복, 특히 내수회복에 기여하는 정도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