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지주가 격동의 시기를 맞고 있다. 출범 1년2개월 만인 지난 5월 신동규 전 회장이 자진사퇴하고 뒤이어 주요계열사 사장 및 임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면서 적잖은 내부 혼란을 겪고 있다. 오랜 진통 끝에 지난 6월11일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이 새 회장에 올랐지만, 내부를 추스르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가 100% 출자한 단일주주 지배구조다. 설립된 시기는 지난해 3월이다. 출범 초기만 해도 KB·우리·신한·하나금융지주를 위협할 경쟁사로 인식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빈 깡통만 요란했다는 평가다.
물론 아직 출범시기가 오래되지 않아 섣부른 판단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신 전 회장이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견제로 물러난 사실이 일부 밝혀지면서 그동안 내부 분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금융지주의 발전보다는 오히려 퇴보한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실제로 신 전 회장은 지난 5월 "지난 1년 동안 속이 새까맣게 탔다. 지치고 힘들었다"면서 "경영이 자유롭지 못하고 농협중앙회와 갈등이 있었다. 현재 농협 지배구조로 봤을 때 제갈공명이 와도 안된다"고 소회를 토로한 바 있다.
이는 그만큼 중앙회가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는 한 농협금융은 독립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임 회장은 앞으로 대외적인 경영은 물론 독립경영까지 두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모피아' 출신…내부 혼란 잠재울까
"금융지주체제를 조속하고 확고하게 안정화시키는데 힘써 나갈 것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겠다."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취임사를 통해 강조한 말이다. 그가 새 회장에 선임되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소통이다. 이를 위해 농협금융 회장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농협노조다. 잦은 최고경영자(CEO) 교체로 농협금융 내부 분위기가 혼란에 빠지면서 소통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내부조직을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발도 만만찮다. 이른바 낙하산 인사 논란이다. 임 회장은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불리는 기획재정부 1차관 출신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힘 있는 정권의 인사가 금융지주를 이끈다면 내부분열이 줄어들고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협금융의 한 관계자는 "신 전 회장의 경우 경영은 물론 내부인사마저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새 회장이 오면 자신의 코드에 맞는 측근을 내세우는데, 사실상 인사권이 없는 신 전 회장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CEO에 불과했다"면서 "하지만 (농협중앙회가) 기획재정부와 국무총리실장까지 역임한 임 회장을 과거처럼 함부로 견제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임 회장이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어떻게 보면 지주 직원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된 것"이라며 "농협중앙회가 앞으로 견제보다는 임 회장과 함께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것 같다"고 예측했다.
◆농협금융이 풀어야 할 과제는?
복잡한 지배구조로 얽힌 농협금융의 가장 큰 숙제는 독립경영이다. 지금처럼 금융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외부가 아닌 내부 싸움이 장기화된다면 농협중앙회마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농협중앙회의 절대 권력자로 꼽히는 최 회장의 견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임 회장도 경영권 보장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부당한 외부의 경영간섭은 단호히 대처해 계열사의 자율적인 경영을 보장하되, 상호협력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수익성을 되찾는 일도 임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농협금융은 신·경 분리 이후 수익부문에서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농협금융은 지난 1분기 당기순이익(연결기준)이 1550억원에 불과하다. 올해 순이익 목표(1조원)에 비하면 초라한 수치다.
중앙회에 매년 수천억원을 지불하는 브랜드사용료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할 이슈다. 특히 이는 임 회장이 강조한 '지주사 경영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중장기적으로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농협금융은 '농협'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는데 따른 대가를 계열사들이 농협중앙회에 지급한다. 매년 매출액 혹은 영업수익의 2.5%를 브랜드 사용료로 내고 있다. 당초 중앙회에 교육사업 지원 명목으로 매년 2000억원가량을 출연했는데, 출범 후 관련비용이 4350억원으로 2배 이상 부풀었다.
이는 농협금융의 당기순이익 4500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때문에 농협금융 계열사들 일각에서는 명칭사용료 인하를 줄곧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회는 3D유통 사업 활성화에 필요한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브랜드 사용료가) 꼭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임 회장이 낙하산 이미지를 벗는 것도 숙제다. 금융권은 MB정권 때부터 정부 관료들이 금융지주 회장을 꿰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권 들어 이러한 낙하산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낙하산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길밖에는 없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앞으로 임 회장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농협이라는 조직의 특성상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면서 "하루빨리 농협금융의 미래를 제시하고 중앙회와 같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