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타고 들려온 이덕훈 신임 한국수출입은행장(65)의 목소리는 밝았다.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수출입은행장으로 선임된 것에 만족하는 듯 했다.
이 신임 행장과 전화통화를 한 시간은 3월12일 늦은 저녁이었다. 이날 오후 5시40분부터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바쁜 업무로 받지 못했다.
이후 두시간여가 지난 오후 8시를 넘긴 시간에 이 행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까지 업무를 봤냐는 질문에 "회의가 이제 끝났다. 아직 신입(?)이라서 할 일이 많다"며 껄껄 웃었다. 그는 "늦은 시간에 전화해 미안하다"는 겸손의 말도 잊지 않았다.
"올해 경영전략이 무엇이냐"는 식상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함축된 한마디로 답했다.
"열심히 하겠다."
◆수십년간 한 우물 판 금융전문가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이 수출입은행장에 선임됐다. 이 행장은 지난 3월11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본점 강당에서 18대 수출입은행장 취임식을 가졌다. 노조의 반대로 출근저지를 당한 지 5일 만이다. 앞서 수출입은행 노조는 이 행장에 대해 '낙하산 인사'라며 선임 반대 집회를 가졌다.
노조의 마찰로 취임식이 예정보다 5일가량 늦어졌지만 이 행장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노조도 수출입은행의 식구로서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가 여유로운 이유는 금융권에서 이미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1949년생으로 경기도 광주 출신인 그는 삼선고와 서강대 수학과·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1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시작으로 대한투자신탁 사장과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우리은행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을 역임했다. 수십년간 금융이라는 한 우물만 파온 셈이다.
특히 지난 2001년 우리은행장으로 취임해 당시 적자였던 우리은행을 3년 연속 흑자로 전환시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또 시장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신뢰 형성을 중요시하고, 세심한 배려와 솔선수범 리더십으로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형·내실 균형적 발전 모색
특유의 여유로움도 보인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지만 그는 오히려 쉼표를 먼저 제시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행장은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 제고와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수출입은행이 최첨병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면서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새로운 비전과 전략의 바구니에 차근차근 담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물론 큰 그림은 모두 스케치했다. 특히 경영 방향성에 대해서는 △부가가치가 높은 전략산업의 수출 활성화 촉진 △아프리카·중남미 등 새로운 시장 개척 △중소·중견기업 육성 △동북아 경제협력 강화와 통일시대 준비 만전 △정보처리 역량 극대화 등 5가지를 꼽았다.
앞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에 대해서는 '균형적인 발전'을 꼽았다. 그는 "최근 수출입은행의 가파른 성장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이제는 외형과 내실, 수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발전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이를 위해 우리의 자원과 역량을 효과성이 높은 부문에 보다 집중하고, 낮은 부문은 점차 조정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그는 "조직구조 역시 금융전문성 강화에 초점을 맞춰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루도록 재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직원에게 당부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이 행장은 "우리가 부단히 추구해야 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인해 상업금융이 발을 내딛기 어려운 분야일 것"이라며 "이러한 거래는 반드시 리스크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통제할 방안도 없이 금융지원을 하는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등반했다가 조난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지식으로 무장해 최고의 금융전문가 집단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낙하산' 비난 벗고 방만 경영 해소 '숙제'
수출입은행의 새로운 수장으로서 이 행장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당장의 현안은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 여론을 벗는 일이다. 이 행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서강대 동문이다. 금융권에서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알려졌다. 특히 서강바른금융인포럼, 서강금융인회(서금회) 등에서 활동하는 서강대 금융인맥의 핵심인사로 꼽힌다.
이는 이 행장도 인정한 부분이다. 그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또 "낙하산 인사가 무슨 죄냐"는 취지의 발언을 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정상화도 그가 풀어야 할 과제다. 공공기관 정상화는 부채감축과 방만경영 해소 계획이 주요 골자다. 앞서 정부는 수출입은행을 포함해 한국거래소, 마사회 등 복리후생이 과도한 38개 기관을 방만경영 공공기관으로 분류했다. 따라서 이들 기관은 복리후생비를 줄이는 등 방만경영 해소에 나서야 한다. 이를 두고 임직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행장은 "금전적 보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신뢰받는 대외거래 전문은행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직원들의 가치를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이 행장이 수출입은행을 신뢰받는 공공기관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프로필
△1949년 경기 광주 출생 △서강대 수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경제학) △미 퍼듀대 대학원(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연구위원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재무부장관 자문관 △한국개발연구원 금융팀 선임연구원 △금융개혁위원회 행정실장 △대한투자신탁 사장 △우리은행장 △카스톤프라이빗에쿼티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