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징계를 받아도 회장직을 유지하며 명예회복 하겠다"는 임 회장에게 강력한 사퇴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조직 내 최고수장으로서 내분을 조기수습하지 못한 책임과 금융당국에 대한 강한 반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KB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과 관련된 경영진에 대한 처분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KB사태는 수습은커녕 장기전으로 확산될 분위기다. 임 회장이 "법적소송도 불사하겠다"며 초강경 대응에 나설 것임을 내비쳐서다.
조기에 진화되지 못한 '진흙탕' 집안싸움이 중재(?)에 나선 금융당국과의 전면전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KB금융의 앞날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임 회장, "진실 밝히겠다"… 법적 소송 갈 듯
'경징계'→'중징계'→'직무정지'. KB사태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엄한 징계가 불가피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차례 굵은 장대비가 내린 뒤 무지개가 뜨는 듯했지만 이는 찰나에 불과했다.
KB사태는 지난 5월 KB국민은행 감사가 금융감독원에 직접 특검을 요청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시작됐다. KB국민은행 주 전산시스템 전환문제를 두고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은행장이 갈등을 빚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에 지난달 21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KB국민은행 주 전산기 전환 문제와 관련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에게 경징계에 해당하는 주의적 경고를 내렸다. KB금융은 안도했고 내분사태로 흐트러진 조직수습이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봉합되지 못한 갈등은 또 다시 터져 나왔다. 화합을 위한 KB금융 경영진의 템플스테이 직후, KB국민은행 측은 임 회장을 비롯한 KB금융지주와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급기야 지난 4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장고 끝에 칼을 빼들었다. 이례적으로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의 경징계 결정을 뒤엎고 중징계 결정을 내린 것. 사실상 "동반 사퇴하라"는 신호였다.
이건호 전 행장은 즉각 "은행장으로서 할 일을 했다"며 사퇴했다. 그러나 임 회장은 달랐다. 그동안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던 것과 달리 "금융당국의 자의적인 결정이 KB금융 전체를 흔들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12일 최종 소명을 위해 금융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직후에도 임 회장은 "현직을 유지한 채 진실을 규명하겠다"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금융당국과의 전면전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법적 소송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날 금융위는 '직무정지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당초 건의된 대로 중징계 안을 확정하리란 예상과 달리 오히려 높은 수위의 징계를 내린 것은 금융당국에 대한 반발을 고려한 '괘씸죄'(?) 적용으로도 풀이된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징계는 ▲경징계 (주의, 주의적 경고) ▲중징계(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등 5단계로 나뉜다. 임 회장에 대한 징계수위는 맨처음 금감원 제재심에서 경징계로 시작해 최수현 금감원장, 금융위를 거치면서 한단계씩 상향됐다. 이에 따라 임 회장은 공식적으로 제재를 통보받은 날부터 3개월간 회장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일각에서는 "소송으로 가면 임 회장이 승소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KB금융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는 법리적 판단보다는 최고경영자 리스크(CEO)에 가중치를 둔 면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소송은 어차피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임 회장에겐 득이 되는 면이 있다. 사퇴 압박에 맞서 남은 2년의 임기를 버틸 명분이 될 수 있다.
실제 금융당국에 맞서 승소한 사례도 있다.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2009년 1월 중징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3년 만에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아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임 회장은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에 직면해있다. 금융당국은 물론 정치권까지 임 회장의 '버티기'에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KB국민은행 노조도 임 회장을 향해 "즉각 사퇴하라"고 압박했다.
◆CEO 리스크로 흔들리는 KB금융… LIG손보 인수 등 먹구름
임 회장의 직무정지에 따라 KB금융은 당장 회장과 행장 자리가 동시에 비는 최악의 경영진 공백사태를 맞게 됐다. 임 회장이 자진사퇴하지 않더라도 3개월간 회장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건호 전 행장은 지난 4일 스스로 물러났다.
KB금융은 조기 안정화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하나 수장이 없는 조직이 이른 시일 내에 정상화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KB국민은행은 현재 박지우 부행장의 대행체제를 가동 중이다.
현재 은행 안팎에서는 차기 행장을 둘러싼 하마평이 무성하다. 내부 출신인 김옥찬 전 부행장과 최기의 전 KB국민카드 사장을 비롯해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도 거론된다.
이에 따라 은행 임직원들은 새 행장 선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행장이 새로 선임되면 임원진도 대거 바뀌는 만큼 향후 불어올 '인사태풍'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KB의 위상과 임직원들의 사기도 추락하고 있다. '리딩뱅크'의 영예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상태다. KB의 한 관계자는 "CEO 교체로 수시로 인사태풍이 불고 업무방향이 바뀌는 상황에서 업무효율이 좋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실제 올 상반기 KB국민은행이 거둔 실적은 그야말로 초라했다. 신한은행이 순이익 8421억원을 달성하며 멀리 달아났지만, KB국민은행은 추격은커녕 총자산 규모가 훨씬 적은 기업은행(5778억)에도 밀리는 5462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KB금융이 분위기 반전카드로 야심차게 추진해온 LIG손해보험 인수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현재 금융권에는 KB사태가 LIG손보 자회사 편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과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일단 KB금융 측은 LIG손보 인수를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KB금융은 이미 금융위원회에 LIG손보 인수 승인신청서를 제출한 상황이다. 승인여부는 오는 10월 결론이 날 예정이다.
금융권에서는 임 회장이 중징계를 받음에 따라 금융위가 LIG손보 자회사 편입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CEO 리스크에 따라 경영실태 평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 만일 이러한 의견이 받아들여져 KB금융이 3등급 이하의 경영실태 평가를 받게 되면 LIG손보 심사 시 부적격 판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은 조만간 KB금융을 포함해 KB국민은행 등 주요 계열사의 지배구조 문제와 내부통제부문 등을 모두 살피는 CEO 리스크 특별점검에 들어갈 계획인 것으로도 전해졌다.
KB금융은 현재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태다. KB금융의 명운이 걸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임영록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결자해지 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