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중위험·중수익상품인 ELS(주가연계증권)가 투자자의 관심권에서 멀어지면서 증권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H지수) 급락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최근 ELS 발행물량이 급감한 탓이다. 이로 인해 수백억원의 손실을 마주한 증권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ELS가 증권사 수익구조를 변화시켜 증권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을 터. 결국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돌려놓기 위해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에 무게를 둔 새로운 ELS를 꺼내들었다.

여의도 증권가. /사진=머니위크DB

◆H지수 폭락이 가져온 파장
ELS는 개별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이다. 자산을 우량채권에 투자해 원금을 보존하고 일부를 주가지수옵션 등 금융파생상품에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특징 때문에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가 뜨거웠다.


하지만 최근 ELS 발행물량이 크게 줄면서 투자자들이 등을 돌렸다. 계속 황금알을 낳을 것만 같았던 ELS가 바닥에 주저앉은 것. 홍콩증시가 고꾸라지고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H지수)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조기상환이 대거 실패했기 때문이다.

H지수는 지난 5월26일 1만4962.74로 52주 최고점을 찍고 지난달 4일 9058.54로 급감했다. 가장 최근 거래일인 지난 14일 1만334.42를 기록하며 1만원대로 다시 올라섰지만 고점 대비 30.94%나 떨어진 상태다.

H지수가 폭락하면서 ELS 조기상환이 어려워졌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달 조기상환된 ELS 상품은 278개에 불과했다. 올 들어 지난 7월까지는 매달 1000개 이상이 조기상환됐다. 특히 지난 7월 한달 중 조기상환된 ELS가 1855개인 점을 감안하면 2개월 만에 85%가 사라진 셈이다.


일반적으로 ELS는 6개월마다 조기상환 기회가 주어진다. 조기상환된 자금은 ELS에 다시 재투자되는 특성상 조기상환이 줄면 재투자 여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한국예탁결제원 관계자는 “3분기에 발행된 ELS의 6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H지수가 급락하면서 조기상환이 줄고 손실 가능성이 늘어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발행금액도 감소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3분기 ELS 발행금액은 17조616억원이다. 전 분기 대비 25.9% 급감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5.3% 줄었다. 올 1분기 24조1039억원이 발행돼 사상 최고수준을 기록한 뒤 2분기 연속 감소세다.

◆500억원 넘게 손실 보기도

ELS를 발행하는 대형증권사들은 3분기에 200억~500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부 대형증권사는 지난 7월까지의 ELS 운용수익 대부분을 8월에 손실 본 것으로 알려졌다.

ELS 운용손실 규모는 자체 헤지 규모에 의해 좌우된다. 대형증권사들은 ELS 발행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헤지거래를 하는데 ELS 운용손실 규모가 큰 증권사는 자체 헤지방식의 ELS 발행이 많았던 곳이다. 이들은 수조원에 달하는 ELS 잔액을 자체 헤지방식으로 발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체 헤지는 투자자에게 상환해야 할 금액을 증권사(발행사)가 직접 운용하며 자체적으로 위험중립적 헤지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다. 자체 헤지를 하지 않으면 백투백(Back-to-Back) 헤지를 한다. 이는 증권사가 외국계 IB 등으로부터 ELS상품을 매수해 리스크를 외부로 전가하는 방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형사들의 ELS 운용손실 규모는 지난 8월과 9월 H지수가 급락하던 상황에서 부풀어 올랐다”며 “자체 헤지 발행이 높았던 곳을 중심으로 손실이 500억원을 넘는 증권사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ELS 손실의 주요원인인 H지수가 이달에 반등하며 증권사들은 손실을 일부 만회했지만 지난 8월의 손실분을 메우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녹인 없앤 ELS 잇단 출시

하지만 ELS는 증권사들이 놓쳐서는 안되는 시장이다. ELS시장을 침체된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게 증권업계의 입장이다. ELS로 인해 증권사들이 실망스런 수준의 3분기 성적표를 받게 될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4분기에는 적극적으로 만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증권업계는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바탕으로 한 상품을 잇달아 내놓았다.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던 ELS트렌드가 저위험·저수익으로 바뀌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ELS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녹인배리어’(Knock in Barrier)가 없는 ‘노(No)녹인’ 상품이 대거 등장한 점이다. 기초자산 가격이 설정기준일 가격의 45~55% 아래로 떨어지면 발생하는 원금손실조건을 없앤 것이다. 또 기초자산 숫자도 줄었다. 기초자산이 많으면 그중 하나만 하락해도 조기상환이 안되거나 녹인이 발생한다. 박은주 한국투자증권 파생상품부 마케팅팀장은 “안정성이 높아지면 수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연 7~8% 수준이던 ELS 수익률이 최근 5%로 낮아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증권, 하나금융투자 등 대형증권사들은 이달 초부터 녹인을 없앤 새로운 ELS상품을 선보이며 투자자에게 다가섰다. 먼저 현대증권은 지난 8일 ‘현대에이블(able) ELS 1226호’와 ‘현대에이블 ELS 1227호’를 모집했다. 이 상품들은 각각 최고 연 4.7%, 4.2%의 수익을 제공한다. 이들은 각각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코스피(KOSPI)200지수·S&P500지수·유로스탁스(EuroStoxx)50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노녹인 구조의 상품이다.

하나금융투자도 같은 날 코스피200과 유로스탁스50을 기초자산으로 한 ‘하나금융투자 ELS 5842회’와 니케이(NIKKEI)225와 유로스탁스50을 기초자산으로 한 ‘하나금융투자 ELS 5843회’를 모집했다. 이들은 모두 녹인 없이 연 6.00%의 수익률을 추구한다.

이처럼 ELS시장은 현재 고수익을 추구하기보다 안전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ELS시장이 출렁이면서 녹인 구간 진입과 원금손실에 대한 우려 역시 커지는 상황에서 기대수익률보다는 실제로 수익을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