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중요성 때문인지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이 앞 다퉈 철강업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해외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다소 늦은 출발. 하지만 한국인 특유의 ‘뚝심’으로 불과 20여년 만에 한국은 ‘철강 강국’으로 도약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철강산업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를 시작으로 중국 발 공급과잉 위기가 덮치면서다.
국내 철강산업이 끝 모를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적 철강 수출액은 217억8700만달러. 지난해 동기 대비 6.6% 줄어든 수치다. 특히 올해 8월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4% 급감했다.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비핵심자산과 계열사를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고, 동부제철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동국제강도 수익성 악화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말 그대로 존폐의 갈림길에 선 ‘총체적 위기’다.
◆ 줄이고 쪼개고… 생존 위해 안간힘
동부제철은 올 상반기 665억원의 당기손실을 기록한 후 자율협약을 접고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지난 10월 19일 채권금융기관협의회는 동부제철의 채권단 공동관리 절차를 자율협약에서 워크아웃으로 전환하기 위한 안건을 승인했다.
채권단의 이 같은 결정은 지난해 10월 동부제철과 자율협약 이행각서를 체결하고 정상화방안을 추진한 지 불과 1년 만이다. 당시 동부제철은 2년 내 자율협약 졸업을 목표로 삼았지만 결국 워크아웃 수순을 밟게 됐다.
수익성 악화에 따른 자금난으로 허덕이는 동국제강은 지난 10월 12일 계열사 디케이아즈텍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11년 5월 사파이어 잉곳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디케이아즈텍을 인수, 대대적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업황 불황으로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결국 인수 4년 만에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동국제강은 또 지난 8월 가동을 중단한 포항 제2후판공장 매각을 추진 중이다. 지난 4월엔 사옥인 페럼타워를 4300억원에 매각했고, 두달 뒤엔 포스코, 포스코 강판, 한국철강 등 보유 상장 주식을 전량 처분하기도 했다.
철강업계 맏형 포스코도 어렵긴 마찬가지. 포스코는 3분기 대규모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연결기준)은 65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8% 감소했고, 매출은 13조996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0% 줄었다. 포스코가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건 지난해 4분기에 이어 두번째. 4분기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포스코 계열사들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올해 초 핵심 계열사였던 포스코특수강을 세아그룹에 매각한 데 이어 지난 4월 손자회사인 포스하이알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 6월엔 포스코플랜텍이 워크아웃에 돌입, 2019년까지 4년의 시간을 더 벌었지만 앞날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포스하이메탈은 최근 자본금 전액을 무상감자 처리한 뒤 포스코가 유상증자 시기와 방법을 놓고 고민 중이다.
포스코가 지난 7월 고강도 경영쇄신을 발표하면서 부실계열사 절반을 줄이겠다고 선포한이후 앞으로 20여 곳이 더 정리될 예정이다. 포스코는 오는 2017년까지 국내 계열사 47곳을 절반으로 줄이고 해외 법인도 30% 감축하기로 했다.
현대제철 또한 판매량 감소에 따른 수익성 둔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 초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철근사업부문을 축소하기 위해 포항공장의 철근 생산라인을 중단했다. 지난 7월에는 현대하이스코까지 합병하면서 이에 따른 손실이 더해져 하반기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상황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좋을 때는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형철강사들이 M&A시장의 큰손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되레 그때 사들인 계열사들이 혹 같은 존재가 돼 떼내기 바쁘다”며 “쪼개고 없애는 방식으로 수익성 강화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철강 수요 감소… 중국 공급 과잉 여전
전문가들은 국내 철강산업의 부진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부진 여파로 철강 수요가 감소한 반면, 중국 등의 공급 확대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11억6000만t의 생산능력을 갖춘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 8800만t, 일본은 1억3200만t에 불과하다. 지난해 생산규모도 중국은 8억 1500만t으로 한국의 약 11배에 달했다.
반면 중국의 철강 수요는 7억3600만t. 한국은 6200만t이다. 생산물량이 자국 수요보다 3억t 이상 많기 때문에 밀어내기 수출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국은 과잉공급으로 수출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출단가는 4년 전과 비교해 20% 정도 하락했다. 그만큼 헐값 수출에 매달린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철강업계가 중국에 기술력으로 대응했지만, 그것만으로 중국의 철옹성을 넘어서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그나마 돈이 되던 철근조차도 중국산 싼 철근이 가격시장 판도를 흔들어 놓으면서 그마저도 갉아먹고 있다. 철강업체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