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에게 ‘휴가가 없는 나라는 어디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절반 이상은 ‘우리나라’라는 답을 내놓는다. 새벽에 집을 나서 9시 뉴스를 집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다.

최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28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멕시코에 넘겨줬던 1위 왕좌를 되찾은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미국이다. 유럽인들이 미국을 부를 때 즐겨 쓰는 별명이다. 유럽인의 눈에는 한국보다 연간 근로시간이 1096시간(45.6일)이나 적은 미국조차도 휴가가 없는 나라로 보이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별명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유급휴가가 법으로 명시돼 있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연봉제가 발달한 탓에 고용계약서를 작성할 때 휴가 일수도 함께 명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경우 15일의 유급휴가를 주도록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다. 유급휴가를 다 쓰는 직장인이 과연 몇 %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제도는 일단 그렇다.

미국의 경우 법적인 장치는 없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직원들의 휴가를 권장하고 있다. 휴가를 통해 재충전을 하고 가정을 제대로 보살펴야만 일의 능률도 오른다는 판단에서다. 심지어 직원들에게 ‘무제한’ 휴가를 주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연말이 되면 연차를 소진하라며 반강제로 휴가를 보내거나 아예 휴가 보상비도 지급하지 않는 회사들이 많은 우리네 실상과 비교하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무제한 휴가’, 넷플릭스 11년전 도입… GE·링크드인·그럽허브 등으로 확산
미국에서 가장 고용을 많이 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 하나인 GE는 올해부터 ‘관대한 접근’(permissive approach)이라는 이름으로 무제한 휴가를 실시하고 있다. GE 직원은 약 30만5000명으로 미국 내 고용인원만 13만6000명에 이른다.

물론 모든 직원이 이같은 특전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과 선임 전문직군 등 3만명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그렇다고 적은 비율은 아니다. 정규직의 43%는 무제한 휴가를 쓸 수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그랜트 손턴(Grant Thornton)도 지난 11월부터 약 7000명의 직원에게 무제한 유급 휴가를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직원간 신뢰도를 높이고 보다 수평적인 문화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영진들은 직원들이 휴가를 서로 조율하기 때문에 업무상 공백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직원들이 더 행복해지면 생산성 또한 높아진다는 것이 경영진의 철학이다.

온라인 배송 서비스업체인 그럽허브(Grubhub)도 ‘유연 고용 계획’을 도입하면서 올해부터 정규직 직원들에게 무제한 휴가를 주고 있다. 아프거나 개인적인 용무 등에 관계없이 무제한 휴가를 주고 일과 삶이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럽허브는 올 4월 1억9200만달러에 상장했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NetFlix)는 이미 11년 전부터 무제한 휴가를 실시하고 있다. 2004년 무제한 휴가를 도입할 당시 얼마나 많은 시간, 며칠을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성과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현재 넷플릭스는 전세계 5700만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이용자들은 매월 20억시간 분량의 영화와 TV 콘텐츠를 시청하고 있다.

세계 최대 비즈니스 네트워크 업체인 링크드인(LinkedIn)도 최근 무제한 휴가 대열에 합류했다. 올 11월부터 연간 최소 휴가와 최대 휴가 제한이 없는 자유재량 타임오프(DTO)를 도입했다. 특히 최근에는 자기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핵데이즈(Hackdays)와 개인 취미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인데이(inDay)도 제공했다.

리차드 브랜슨 버진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9월 “직원들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기간에 제약없이 유급 휴가를 다녀올 수 있도록 하겠다”며 기존 휴가 제도를 폐기처분했다. 우선 시범적으로 뉴욕과 런던 등에 있는 약 160명의 직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브랜슨 CEO는 넷플릭스의 휴가 제도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동통신과 호텔, 항공사 등 모든 버진 그룹 계열사로 무제한 휴가를 확대할 계획이다.

◇ 무제한 휴가, 과연 누구에게 이득인가

무제한 휴가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직원들이 무제한 휴가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업문화와 직장 상사 모두 이를 용인해야 하지만 이런 전제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무제한 휴가를 도입한 인사관리 전문회사 맘모스HR의 경우 직원들의 휴가 사용 일수는 14일로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미국 여행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근로자들의 평균 휴가 일수는 16일로 2000년 21일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상당수 직원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승진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제한 휴가를 활용하는게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무제한 휴가는 직원들에게 애사심을 높이고 이직을 막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회사 입장에서는 무제한 휴가를 도입하면 사용하지 않은 휴가에 대한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에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114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기업들의 직원 1인당 평균 휴가 보상비는 1898달러로 나타났다. 기업 전체로는 656억달러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경영자 입장에서 무제한 휴가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컬설팅업체인 에이온 휴이트의 카롤 슬래덱 파트너는 “무제한 휴가 도입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는 상당하다”며 “수당 지급 의무를 사라지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현재 무제한 휴가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 미국 기업의 1~2%에 불과하다. 슬래덱은 무제한 휴가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며 상당수 경영진이나 전문 직군을 대상으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