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 두번째)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경총 임시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임한별 기자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해야할 경제단체들이 잇단 내우외환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후 급속도로 세가 줄어든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이어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최근 내부에서 촉발된 문제로 때 아닌 적폐 논란에 휩싸였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공정거래위원회 간부 출신의 부정취업 의혹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이들 단체가 휘청이면서 사실상 대한상공회의소만 홀로 제 기능을 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경제단체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거라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위기 내몰린 단체들

경총의 내부 문제는 송영중 전 상임부회장 사태를 계기로 외부에 드러났다. 지난 5월 경총이 최저임금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노동계 편을 들어준 원인이 고용노동부 관료 출신인 송 전 부회장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며 회원사들과 내부직원들이 크게 반발했다.


결국 송 전 부회장은 이달 초 열린 임시주총에서 해임됐지만 이 과정에서 경총의 자금유용 의혹이 제기됐다. 경총이 김영배 전 부회장 시절 일부 사업수입을 유용해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이를 임직원 특별상여금(격려금)으로 지급했다는 것.

경총은 회계절차상 불투명한 관행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비자금 조성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번 내분의 이유가 이 같은 회계 관행을 ‘적폐’로 보고 개혁·변화를 추진한 송 전 부회장에 대한 임직원들의 반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총은 곧바로 회계 투명성 강화방안을 내놨지만 자금유용 의혹은 여전하다. 사업수익에 대한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새롭게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삼성그룹 노조 와해 작업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의 조사까지 받고 있다. 창립 이후 유례 없는 위기에 내몰린 셈이다.


재계에서는 경총이 전경련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재계의 ‘원조 맏형’인 전경련은 1년이 넘도록 위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후 삼성, 현대차, SK, LG 등 주요그룹이 줄줄이 탈퇴하며 규모가 급속도로 축소된 상황에서 지난해 3월 대대적인 내부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다. 오히려 지난해 5월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 주요행사에서 배제되는 등 ‘전경련 패싱’을 겪으며 위상이 급속도로 추락했다.

중소기업들의 대정부 소통창구인 중기중앙회도 상황이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공정위를 퇴직한 고위 간부들이 재취업하는 과정에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기중앙회에 취업했다는 의혹으로 최근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것.

현재 제 기능을 하는 것은 대한상의 정도다. 경제 5단체 중 하나인 무역협회가 있긴 하나 무역에 특화된 단체특성상 대정부 소통창구 역할을 주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A기업 관계자는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논의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경제단체들이 기업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분위기 반전 이룰까

지난 9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경제단체 관계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019년 적용 최저임금 관련 경영계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DB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근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재계와의 관계를 회복, 경제단체들이 다시 힘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최근 유례 없는 고용쇼크에 놀란 정부가 재계의 목소리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 근로시간 단축 시행과 관련해 6개월의 계도기간을 갖고 연착륙을 도모해 달라는 경총의 요청을 수용했다.

이 총리는 “경총의 제안은 근로시간 단축을 연착륙시키기 위해 검토할 가치가 있다”며 “경제부처 중심으로 이 문제를 협의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지난 5월 실업률이 4.0%로 전년 동월 대비 0.4% 오르고 15~29세 청년실업률은 10.5%로 역대 최악을 기록하자 일자리 창출의 열쇠를 쥔 민간기업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는 해석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또한 규제개혁에 속도를 내달라는 대한상의의 요청에 “속도감 있게 빠른 시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와 함께 시장에서 규제개혁 분위기,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건의사항은 최대한 검토해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와 전경련의 관계 회복 조짐도 보인다.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혁신성장’ 정책 추진을 위해 전경련을 간담회에 초청하기로 했고 이달 18일 개최되는 ‘하계 최고경영자(CEO)포럼’에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참석하기로 한 것. 이는 일자리 창출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의도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경제단체와 소통을 확대한다면 자연스럽게 단체들의 위상도 강화될 것”이라며 “각 단체의 위상 강화는 기업들의 투자 여건 조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리경제를 활성화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9호(2018년 7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