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9시즌 29년 만의 리그 우승을 노리는 리버풀. 지난 4일(한국시간) 패배로 맨체스터 시티에 추격을 허용했으나 여전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2018-2019시즌 29년 만의 리그 우승을 노리는 리버풀. 지난 4일(한국시간) 패배로 맨체스터 시티에 추격을 허용했으나 여전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무려 29년 만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을 노리는 리버풀에 제동이 걸렸다. ‘붉은 제국’의 재건 행보를 멈춰 세운 것은 ‘디펜딩 챔피언’ 맨체스터 시티(맨시티). 2019년 새해 첫 경기서 패배를 당한 리버풀은 2위 맨시티에 여전히 4점 차로 앞서고 있으나 총 17경기를 남겨둔 만큼 추월당할 가능성도 적지않다. 무엇보다 리버풀은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된 기억이 선명한 팀이기도 하다.
◆유럽 무대 붉게 물들인 리버풀, 끔찍한 참사로 우승권과 멀어지다

1989-1990시즌 마지막 리그 우승을 달성하기 전 리버풀은 구단 역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지금과 달리 소위 말해 리그 우승을 ‘밥 먹듯이’ 이루는 팀이었다. 1980년대의 리버풀은 잉글랜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적수가 없었다. ‘명장’ 빌 샹클리 감독의 지휘 하에 정상급 팀으로 복귀한 리버풀은 이후 밥 페이즐리 감독과 영광의 시대를 보냈다.


306승, 21회 우승. 페이즐리 감독이 1974년 부임 후 불과 9년 동안 이룬 업적이다. 21회의 우승 횟수에는 7번의 1부 리그(현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물론 3회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도 포함됐다. 페이즐리 감독이 1983년을 끝으로 팀을 떠났으나 리버풀은 또다시 유러피언컵을 들어 올리며 붉은 제국의 해는 저문다는 법칙을 잊은 듯했다.

1984-1985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오른 리버풀은 대회 2연패를 눈앞에 뒀다. 상대는 미셸 플라티니가 이끌던 이탈리아의 거함 유벤투스. 그러나 이날 리버풀의 역사를 뒤바꿀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무척이나 극성이었던 리버풀 팬들은 흥분한 나머지 경기 도중 유벤투스 팬들은 물론 중립 관중들까지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을 피하기 위해 많은 관람객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면서 하중을 이기지 못한 콘크리트벽이 무너지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결승 무대는 39명이 압사당하고 총 454명이 부상을 입은 ‘참사’의 현장으로 변했다.


이후 UEFA 측은 잉글랜드 소속 클럽들에게 5년 동안 유럽 대항전 출전 금지의 중징계를 내렸으며 특히 리버풀에는 7년 동안 출전 자격을 박탈했다. 이후 페이즐리 감독 휘하에서 활약했던 ‘킹’ 케니 달글리시가 지휘봉을 잡은 후 리그와 FA컵 우승을 일궈내며 재건에 나섰으나 4년 후 ‘힐스버러 참사’까지 겪은 리버풀은 서서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리버풀 구단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히는 '캡틴' 스티브 제라드. 2013-2014시즌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에 오르는 등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나 끝내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2017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사진=로이터
리버풀 구단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히는 '캡틴' 스티브 제라드. 2013-2014시즌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에 오르는 등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나 끝내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2017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사진=로이터

◆크리스마스 후 넘어진 리버풀, 두번의 좌절과 함께 굴욕의 기록 쓰다
참사의 충격으로 달글리시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리버풀은 1989-1990시즌 리그 우승을 끝으로 서서히 주저앉았다. 1991-1992시즌 FA컵 우승을 차지했으나 점차 리그에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이때 한수 아래라고 여겼던 노스웨스트 지역의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알렉스 퍼거슨 선임 하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리버풀을 떠난 달글리시는 블랙번 로버스에서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앨런 시어러와 함께 리그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버풀은 맨유는 물론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아스날, 첼시에도 밀리며 우승 경쟁과 거리가 먼 팀으로 전락했다.

이후 리버풀은 2004-2005시즌 터키 이스탄불에서 AC밀란을 상대로 기적적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나 리그 우승 트로피는 좀처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어느덧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멀어진지 2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시즌 지역 라이벌 에버튼에게 밀리며 리그 5위까지 처졌던 리버풀은 2008-2009시즌 드디어 우승 기회를 잡았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영입하면서 스티븐 제라드-사비 알론소-마스체라노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진을 구축한 리버풀은 당시 전성기를 맞이한 공격수 페르난도 토레스와 함께 시즌 초반 승승장구했다.

반면 전 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자 리그 3연패를 노리던 맨유는 해당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빠지며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급급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2008년 12월23일 18라운드 일정이 끝난 후 리버풀은 첼시를 1점 차로 제치고 리그 1위에 올랐으며 맨유는 두 경기를 덜 치렀으나 리버풀에 승점 7점이 뒤진 4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맨유가 박싱데이를 쓸어 담으며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새해 들어 리버풀이 2연승 후 스토크 시티와 에버턴, 위건을 상대로 무승부에 그친 반면 맨유는 같은 기간 난적 첼시를 3-0으로 완파한 것을 포함해 5승을 거두며 22라운드부터 리버풀을 득실차로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발동이 걸린 맨유는 무려 11연승을 달리며 리버풀과 첼시와의 격차를 벌려 나갔다. 이후 리버풀이 29라운드 맨유의 홈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4-1 대승을 거두며 추격에 나섰고 맨유는 풀럼에게도 일격을 당하며 맨유가 한 경기 덜 치른 상황에서 승점 차는 단 1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34라운드 아스날전이 결정적이었다. 안드레 아르샤빈의 ‘4슈팅 4골’로 유명한 그 경기다. 이후 맨유가 5경기 동안 승점 13점을 따내면서 결국 리버풀은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2013-2014시즌은 더 가까운 거리서 우승컵을 놓쳤던 시기다. 당시 라이벌 맨유는 퍼거슨 감독 은퇴 후 데이비드 모예스 체제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며 중위권으로 추락했다. 대신 시즌 중반까지 리버풀과 아스날, 첼시, 맨시티가 치열하게 선두 다툼을 이어갔다.

이때도 리버풀이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 카디프 시티를 3-1로 꺾으며 아스날을 승점차로 제치고 리그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후 우승 경쟁팀인 맨시티와 첼시에게 연이어 패하면서 리버풀의 우승은 멀어지는 듯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스날이 28라운드서 리버풀에게 5-1 대패를 당하는 등 뒷심 부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맨시티 역시 주춤했다. 당시 루이스 수아레즈와 다니엘 스터리지 라힘 스털링의 스리톱은 어떤 팀도 막을 수 없는 화력을 자랑했다. 다른 상위 팀들과 달리 유럽대항전을 병행하지 않은 점도 리버풀에게 있어 큰 이점이었다. 아스날전 이후 파죽의 9연승을 달린 리버풀은 35라운드 안필드에서 맨시티에게 짜릿한 3-2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직감했다.

그러나 리버풀은 36라운드 첼시와의 홈경기서 0-2 완패를 당하며 우승 목전에서 무너졌다. 당시 ‘캡틴’ 제라드가 수비 진영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책으로 뎀바 바에게 쐐기골을 허용한 장면은 최악의 순간이었다. 이후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3골을 내리 내주며 거짓말 같은 무승부까지 치른 리버풀은 맨시티에게 우승컵을 반납했다.

두번의 아쉬운 준우승을 거둔 리버풀은 굴욕적인 기록까지 썼다. 지난 10년 간 1위로 크리스마스를 보낸 팀 중 우승에 실패한 팀은 두 시즌의 리버풀 밖에 없다. 

2015년 10월 부임 후 리버풀을 세계 정상권 팀으로 성장시킨 위르겐 클롭 감독. 후반기에도 리버풀을 잘 이끈다면 구단의 숙원을 풀어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사진=로이터
2015년 10월 부임 후 리버풀을 세계 정상권 팀으로 성장시킨 위르겐 클롭 감독. 후반기에도 리버풀을 잘 이끈다면 구단의 숙원을 풀어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사진=로이터

◆‘역대급 페이스’ 리버풀, 덜미 잡혔지만 전망은 ‘초록불’
비록 리버풀이 맨시티전 패배로 무패 숫자를 ‘20’에서 마감했지  이번 시즌 내내 강력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도 우승 전망이 높은 편이다. 

먼저 어느 팀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베스트 11 선수진은 리버풀의 가장 든든한 장점이다. 사디오 마네-호베르투 피르미누-모하메드 살라의 스리톱은 유럽 최고의 공격진으로 우뚝 섰으며 풀백 트렌드 알렉산더-아놀드, 앤드류 로버트슨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잉글랜드 최고의 철벽으로 거듭난 센터백 버질 반 다이크와 골키퍼 알리송 베커의 활약은 놀랍다. 훌륭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대인 방어는 물론 협력 수비까지 확실한 반 다이크는 빌드업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는데 리그에서 그가 기록한 패스 성공률은 무려 89.7%에 달한다.

맨시티 전에서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낸 알리송도 시즌 내내 숱한 세이브 장면을 연출하며 전임 골키퍼인 시몽 미뇰레, 로리스 카리우스와는 다른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21경기 동안 무려 12번의 클린시트를 만들며 리버풀의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이 적극적으로 압박축구를 구사할 수 있도록 든든히 보좌했다.

한편 박싱데이를 거친 잉글랜드 선두권 팀들은 이제 더 험난한 일정을 앞두고 있다. 상위권 팀 모두 오는 2월부터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토너먼트를 치르는 가운데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FA컵 일정도 병행된다. 이런 상황에서 로테이션을 적절히 가동하며 승점을 착실히 따내는 팀이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시즌 리버풀의 로테이션은 수준급이다. ‘슈퍼 서브’로 거듭난 세르단 샤키리가 미드필더와 포워드 어느 자리에서도 활약할 수 있으며 파비뉴와 스터리지 역시 제 역할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여기에 부상으로 이탈한 조 고메즈와 나비 케이타도 복귀를 앞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일정에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토너먼트와 달리 풀리그에서는 상대적 약팀들을 상대로 최대한 많은 승리를 따내야 한다. 우승 경쟁과 먼 10개 이상의 팀들을 두번씩 상대하는 만큼 총 60점이 넘는 승점이 이들과의 맞대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의적풀’이라 불렸던 준우승 시즌의 리버풀도 의외의 경기에서 승점을 잃으며 역전을 허용했다.

리버풀이 이전과 차이를 보이는 또 다른 점도 여기에 있다. 현재까지 리버풀은 ‘빅6’라 불리는 맨시티, 토트넘, 첼시, 아스날, 맨유를 제외한 14개 팀을 상대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승점 42점을 쓸어 담았다.

맨시티의 추격이 만만찮지만 리버풀은 20라운드까지 17승 3무를 거두며 구단 역사상 리그 최고 성적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훌륭하게 팀을 이끌어 온 위르겐 클롭 감독이 추후 일정에서도 뛰어난 용병술을 적재적소에 발휘한다면 이번만큼은 리버풀이 우승컵을 차지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