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홍보탑 제막식. /사진=뉴시스 홍효식 기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홍보탑 제막식. /사진=뉴시스 홍효식 기자
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인수봉 암벽을 오르다 18m 아래로 추락했다. 갈비뼈 7개가 부러지고 골반도 부서졌다. 전치 24주 진단을 받았다. 사고 전후 통증도 엄청났다. 하지만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머리만 괜찮으면 아무리 많이 다쳐도 현대의학으로 대부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정초에 대모산을 함께 오른 선배가 들려준 경험담이다. ‘머리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은 ‘얼만 살아 있으면 나라가 망해도 다시 국권을 찾을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우리나라는 비록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했어도 얼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아 3·1대한독립만세운동을 벌이고 상해임시정부를 세워 마침내 광복을 맞이했다.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의의

올해는 대한민국에 참으로 뜻깊은 해다.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3·1운동은 배달민족의 얼이 죽지 않고 온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 거사였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무단통치에 10년 동안 숨죽이며 지냈던 온 국민이 일제 사주를 받은 광무황제 독시(毒弑)에 울분을 한꺼번에 터트리며 일어났다. 총, 칼질을 해대는 일제에 맞서 질서정연하게 평화적 만세운동을 벌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두달 뒤인 1919년 5월4일, 중국에서 일어난 평화적 항일투쟁인 ‘5·4운동’과 간디를 중심으로 한 인도의 비폭력 항영(抗英)투쟁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나라가 망하는데도 신성하게 망하기도 하고 더럽게 망하기도 한다. 신성하게 망한다 함은 일반 인민이 의롭게 끝까지 싸우다가 어쩔 수 없이 망하는 것이요, 더럽게 망함은 일반 신민이 적에게 아부하다가 적의 술수에 떨어져 항복하고 망하는 것이다.”

이는 김구 주석이 <백범일지>에서 소개한 자신의 스승 고능선의 말이다. 대한제국은 비록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 정미7적, 경술8적 등 반민족 친일역적에 의해 더럽혀졌지만 수없이 많은 항일애국투사의 얼이 살아있어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40여일 만에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은 더욱 획기적인 일이었다. 상해임시정부는 서구제국주의와 일제에 의해 19세기 중반~20세기 초에 식민지가 된 20여개 아시아·아프리카 나라 가운데 해외에 망명정부를 세워 장기투쟁을 한 유일무이한 사례다.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광복군이라고 하는 정식 군대를 만들어 연합군과 함께 무력투쟁한 단 하나의 사례다.

◆한계를 뛰어넘은 독립투쟁

상해임시정부에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의 3요소인 주권·영토·국민을 강탈당한 상황에서 해외에 세운 임시정부였기에 수립된 지 10여년은 강한 지도력이 확립되지 못했고 때문에 일사분란한 항일투쟁을 하지 못했다. 소련에서 불어오는 공산주의 바람과 민주주의 진영 사이의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분열된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 와중에 청산리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과 의병장 출신의 김규식 장군, 백광운·정일우 장군 등이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하는 비극도 연출됐다. 김구 주석도 일제의 밀정 이운한의 흉탄을 맞고 한달 이상 사경을 헤매다 극적으로 회생했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김구 의경찰대장 겸 특무대장(당시) 주도로 ‘한인애국단’을 만들어 반전을 모색했다. 이봉창 의사의 일왕 유인 저격(1932년 1월8일)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1932년 4월29일)로 임시정부는 기사회생했다. 해외동포의 지원금이 늘었고 장개석 중국 총통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 냈으며 광복군을 창설했다.

마침내 1943년 12월1일,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확인한 카이로선언이 나왔다. 대한제국이 낳고 키운 ‘대한세대’가 대한민국 독립의 주춧돌을 놓은 것이다.

물론 카이로선언은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신탁통치 음모’로 “적당한 시기에”라는 어구가 들어가 한반도 분단이란 불행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로지 대한민국만 2번이나 거론됐다는 점에서 태평양전쟁 종전 뒤의 국제질서를 논의한 카이로선언은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주요 의제로 다룬 아주 중요한 국제문서다.

◆앞으로 100년, 어떻게 맞이할까

정부와 학계, 예술계와 재계 등 모든 분야에서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의 풍성한 기념을 준비 중이다. 남북 관계가 좋아진 덕분에 북한과 기념식을 함께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고 어느 때보다 풍성한 기념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도 적지 않다. 자신들이 처해있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념식 성격을 달리하려는 갈등조짐을 보인다. <장자>에 나오는 ‘와각지쟁’(蝸角之爭,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의 오류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와각지쟁은 우물 안 개구리와 비슷하다. 평생 한 우물 안에서만 산 개구리가 아는 세상이란 우물과 그 우물 위의 하늘뿐이다. 공자가 태산에 오른 뒤 노나라가 작다는 것을 알았듯이 우물을 박차고 나와야 더 넓은 시각으로 더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다. 보다 높은 곳에서 넓게 봐야 눈앞의 이익을 놓고 싸우는 달팽이 신세를 벗어날 수 있다.

노란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계는 온통 노란색이다. 세계를 바꾸는 것보다 내 색안경을 벗는 것이 훨씬 쉽고 효과적이며 실체에 부합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얼이 살아있도록 해야 한다.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앞으로 100년을 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얼 살리기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6호(2019년 1월22~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