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6월 교보문고 개장기념식에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을 맞이하고 있는 대산 신용호(왼쪽) / 사진=교보생명
1981년 6월 교보문고 개장기념식에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을 맞이하고 있는 대산 신용호(왼쪽) / 사진=교보생명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에 공헌한 기업들이 주목받는 가운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신 회장의 조부 신예범과 백부 신용국, 선친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는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해 온 인물로 꼽힌다.

신예범 선생은 일제강점기 야학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일본인 지주의 농민수탈에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했다.


신용국 선생은 20살에 3.1만세운동에 뛰어든 후 호남 지방의 항일운동을 이끌다가 여러 차례 감옥에 갔다. 전남 영암의 대표적 농민항일운동인 ‘영암 영보 형제봉 사건’에서는 일본 소작인 응징과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1월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그에게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대산 신용호 선생은 독립사상가 신갑범 선생의 추천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던 이육사를 만나면서 국가와 민족에 눈을 떴다. 그는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사업의 길에 들어섰으며 1940년 베이징에 ‘북일공사’를 설립해 곡물 유통업으로 큰 성공을 거둬 수익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했다.

이육사는 경술국치 이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상세히 거론하며 신용호 선생에게 사업의 중요성과 사업가의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고 전해진다. 신용호 선생은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족자본가로의 꿈을 키우게 됐으며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교육보험 사업을 결심, 교보생명을 설립하게 된다.


그의 창립철학은 교육보험, 교보문고, 교보교육재단,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국민교육진흥의 구현으로 이어지고 있다.

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 개업식에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대산 신용호 / 사진=교보생명
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 개업식에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대산 신용호 / 사진=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은 1996년 서울대 의대 교수에서 교보생명으로 자리를 옮겼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부친의 설득이 주효했다.
그는 2000년 대표이사에 오른 뒤 대대적인 변화혁신으로 국내 생보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관행으로부터 대대적인 변신을 선도했지만 선대가 일궈놓은 창업정신 계승에는 더 적극적이었다.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의 현대적 재해석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교보교육재단과 함께 체험중심·인성개발·지혜함양의 방법을 통해 참사람 육성을 표방한 ‘체·인·지 리더십 프로그램’은 국민교육진흥의 미래의 방향성을 읽게 한다.

신 회장은 대산 신용호 창업주가 1996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데 이어 22년만인 2018년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이지만 문학과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한 예술인 부자가 세운 전대미문의 기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