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선진 경영문화 정착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주주이익과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장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니S>가 우리나라 경영선진화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갈길 먼 ‘경영 선진화’] ④끝·회계투명성 높일 혁신방안은?
회계란 개인이나 기업 따위의 경제활동 상황을 일정한 계산방법으로 기록하고 정보화하는 것을 뜻한다. 경영진이나 실무자 등 내부이용자나 투자자는 이를 활용해 기업의 현재 상황과 과거 변화추이를 가늠하고 앞으로의 전략이나 방향을 설정한다.
전문가들은 현재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신 외감법) 도입으로 회계환경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이와 함께 당면과제로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과 회계업계의 의식변화와 금융당국의 중간자적 역할을 강조한다.
◆기업 vs 회계업계, 키는 당국이
전문가들은 올해 본격 시행되는 신 외감법 시행에 높은 평점을 줬다. 진일보한 제도가 다수 도입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기업의 반발을 사고 있다. 비용부담과 함께 상대적으로 커지는 회계법인의 권한을 경계하는 목소리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회계업계가 모두 의식적인 노력을 반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는 금융당국이 기업과 회계업계를 조율하는 ‘키’ 역할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신 외감법 시행 이후 가장 먼저 잡음이 나온 것은 표준감사시간 적용에서다. 지난달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표준감사시간 확정안을 발표했다. 한공회는 이를 통해 표준감사시간 적용 기준이 되는 외부감사 대상 회사 그룹을 11개로 나눠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또 표준감사시간 적용 시 직전 사업연도 감사시간을 감안해 ‘상승률 상한제’를 도입한다.
|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기업의 외부감사 부담 완화를 위한 간담회. /사진제공=금융위원회 |
이에 대해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코넥스협회 등 경제단체는 ‘한공회의 표준감사시간 일방적 확정 발표 수용 거부 공동입장’을 발표하며 반발했다. 산정근거가 불확실하고 기업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아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반응에 평가는 갈린다. 한공회의 표준감사시간 확정안이 지나친 비용부담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와 인프라가 취약한 중소기업에게는 충분히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표준감사시간 확정안은 공인회계사에서 처음 내놨던 것과 비교해 부담이 상당히 완화됐다”며 “(기업들은) 피해가는 방법을 생각하지 말고 취지를 살려 지키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다. 어느 정도 부담은 되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큰 부담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종선 코스닥협회 정책본부장은 “기업들이 투명성을 높이자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투명성이 강화되면 평가를 더 잘 받을 수 있고 기업가치에 대한 디스카운트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면서도 “제일 힘든 것은 회계 인프라가 취약한 중소기업이다. 일반적으로 사내에 회계전문인력이 굉장히 부족하다. 이에 대한 고민을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런 갈등은 회계업계 독립성 강화에 따른 기업의 상대적 지위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중간역할과 회계업계의 책임감 강화를 해답으로 꼽았다.
김 본부장은 “회계법인은 중소기업보다 어차피 우월적인 지위를 가졌다”며 “특히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며 회계자의 자의적 판단 영역이 넓어져 기업에게 부담이었는데 이를 금융당국에서 특정해주면 분쟁의 소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이런 갈등이 불거지자 지난 12일 ‘기업의 외부감사 부담 완화를 위한 감독지침’을 내놨다. 주기적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 등을 통해 감사시간이 증가함으로써 감사보수 또한 상승해 기업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옴에 따라 관리·감독과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금융위와 금감원은 과도한 감사보수를 요구하는 감사인을 기업이 신고할 수 있는 센터를 마련해 운용할 계획이다. 또한 감사를 빌미로 외부용역을 요구하는 등 감사인의 부당행위에도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신 외감법, 독립성 보장이 핵심
신 외감법은 여러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데 골자는 표준감사시간 도입과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로 감사인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감사인을 선임할 때 6년은 기존처럼 자율적으로 선임하고 나머지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대상기업은 2300여개로 매년 220~230개의 기업을 순차적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오는 10월부터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매년 220여개사의 감사인을 지정할 예정이다.
기업이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을 때 일정시간 이상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표준감사시간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대비 적은 회계감사시간으로 감사품질이 떨어지는 현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신 외감법에는 등록된 회계법인만 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도록 한 상장사 외부감사인 등록제도와 외부감사 대상 기업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확대하는 방안 등도 담겼다. 또 기존 경영진이 선임한 감사인을 감사위원회에서 선임하게 해 독립성을 높이기로 했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이견이 다소 있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회계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갖춰졌다고 봐야 한다”며 “이렇게 해도 우리나라 회계투명성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대안이 없을 정도로 개정됐다”고 평가했다.
김 본부장은 “우리나라 기업 투명성이 전세계 꼴찌라는 한공회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신 외감법을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졌다. 기업의 입장에서 애로사항도 있지만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도 녹아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4호(2019년 3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