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뉴시스 DB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뉴시스 DB


가업승계에 따른 상속세가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사이 해외 경쟁사들은 덩치를 키우고 있다. 국내의 경우 가업상속공제 혜택이 연매출 3000억원 미만 기업에게만 적용되면서 매출 30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이 되길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이 중소기업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에 따르면 매출 3000억원 이상은 최고 세율 65%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인데 여기에 최대주주 할증 과세가 붙으면 최고 65%까지 치솟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창업 10년 이상 된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가업승계의 최대 걸림돌은 상속세로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에서 가업승계를 고민 중인 응답자 가운데 69.8%가 ‘상속세 등 조세 부담’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일부 중소기업은 매출 3000억원 이상에 따른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투자를 주저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매출 3000억원 미만을 유지할 경우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주춤할 때 해외 경쟁사 ‘훨훨’

가업상속공제는 원활한 승계 지원을 위해 일정 규모 미만 기업에 대해 고율의 상속세를 피할 수 있도록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현행 상증세법에서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한 경우 최대 500억원까지 가업상속에 따른 세금공제가 가능하다.


문제는 가업상속공제가 기업 투자 의지를 꺾는다는 점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산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 사이 해외 경쟁사들은 적극적인 투자활동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블록체인 중소기업 A사를 운영하는 안모씨는 “아직까지는 상속세 걱정이 들지 않지만 앞으로 기업이 커질 경우 부담이 될 것 같다”며 “해외 경쟁사들이 산업에 집중할 때 국내 중소기업들은 상속세·규제 등 신경쓸 것이 많다”고 토로했다.

글로벌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기업수를 살펴보면 최근 중국 유니콘기업의 증가세가 급격하다. 미국의 시장분석기관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글로벌 유니콘수 311개 가운데 한국은 6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지만 중국의 유니콘기업은 85개에 달했다.

기업성장과 관련해 정부 정책·규제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상속세도 기업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상속세 제도 자체가 없다. 오로지 기업의 성장을 목적으로 투자를 집행하고 기업을 운영하면 된다. 이외에도 캐나다(1971년), 호주(1979년), 이스라엘(1981년) 등은 일찍이 상속세를 폐지했다.

반면 한국의 상속세 세율(50%)은 미국(40%)·영국(40%)·덴마크(36%)·독일(30%) 등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최고세율(26.6%)의 두배 수준으로 총 35개국 중 일본(55%)에 이은 두번째다.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9월 상속세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 세제 개편안(2025년부터 적용 예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상속세가 기업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2017년 12월1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찬성 208표, 반대 1표, 기권 5표로 통과됐다. /사진=뉴시스 DB
2017년 12월1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찬성 208표, 반대 1표, 기권 5표로 통과됐다. /사진=뉴시스 DB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10년→7년’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해 500개 중소기업 중 58.0%만이 가업 승계를 계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2017년보다 9.8%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승계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기업도 2017년 32.0%에서 지난해 40.4%로 늘었다.

반면 독일도 한국처럼 상속세 제도가 있지만 가업 승계에 한해서는 최대 100%까지 세금을 공제해준다. 한국에도 상속세를 줄여주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한다.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업을 물려주는 사람이 상속 당시 회사 주식의 50%(상장사는 30%)를 갖고 있어야 한다. 상속자도 사후관리기간인 10년간 자산·지분율·고용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직원 구조조정도 불가능하다. 이를 어기면 감면받은 상속세를 토해내고 가산세도 물어야 한다.

독일의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상속자가 5년만 경영해도 상속세 85%를 공제해주지만 한국에선 10년 이상 대표로 직접 경영에 참여해야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다. 사후관리기간을 두고 불만이 잇따르자 정부는 최근 가업상속공제 제도 사후관리기간을 기존 10년에서 7년으로 단축하는 상속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상속인이 업종을 변경할 수 있는 변경 범위도 완화해 중소·중견기업의 가업승계 부담을 낮출 방침이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독일과 일본에도 있지만 해당 국가에서는 업종 유지 조건이 없다.

그러나 ‘연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소기업에 500억원까지 공제한다’는 현행 가업상속공제 대상과 한도는 ‘더이상 확대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가업상속제도 대상과 한도를)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1호(2019년 5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