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 행위를 정신건강 질환에 포함시키는 제11차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을 발표하면서 전세계 게임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이달 열리는 세계보건총회에서 회원국들의 합의가 이뤄질 경우 2022년부터 권고안 형태로 전달될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WHO가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면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혀 게임업계와 주무부처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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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용 장애, 어떻게 판단하나
게임이용 장애가 국제질병분류(ICD)의 질병코드로 등재되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도 관련 기준을 편입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게임 중독이 정식 질병으로 등재되는 것을 의미한다.
WHO에 따르면 게임 이용시 시작시점, 빈도수, 강도, 지속시간, 중단, 맥락 등에 대해 조절이 어렵거나 삶의 다른 흥미요소 및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을 때 중독으로 규정한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함에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더 오래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당 특성이 1년 이상 명백하게 드러나거나 모든 진단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게임이용 장애로 진단할 방침이다.
국내 게임업계와 주무부처는 이런 WHO의 입장에 대해 반박했다. 게임이용 장애를 규정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며 각 전문가와 이용자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배제됐다는 이유에서다. 게임 중독의 질병 여부에 대한 의견은 의료계에서도 수년간 갑론을박이 이어져온 이슈다.
새 질환을 공식화하기 위해서는 질병 분류 시스템상 임상시험을 포함해 최대 20년에 달하는 연구기간이 있어야 하지만 ICD-11에 게임 이용장애를 포함한 절차는 해당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WHO는 관련 개정에 대한 배경에 대해 “수년간의 연구결과에 따라 게임 중독의 유해성을 충분히 입증했다”는 입장이지만 사전연구나 관련 자문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게임 질병코드 등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WHO가 공개한 ICD-11 의견 수렴 사이트에 각각 반대 입장을 전달한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WHO 측에 과학적 근거 없이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코드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전달한 상태”라며 “문체부는 보건복지부와 입장이 다르며 KCD를 관장하는 통계청과도 의견을 교류할 계획이다. 통계청이 문체부와 복지부 의견을 각각 청취할 수 있어 해당 과정에서 관련 사안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질병코드 등재, 산업에 미칠 영향은
게임이용 장애가 질병코드로 분류되면 국내 게임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지난해 이덕주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게임 과몰입 정책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관련 제도 도입을 통한 게임시장 위축규모는 2023년 379억원, 2024년 1조7019억원, 2025년 3조3659억원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이 게임 제작·배급 업체 147곳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질병 코드화를 통해 국내 매출, 해외 매출, 관련 종사자수를 합한 규모가 2023년 22.7%, 2024년 16.9%, 2025년 15.0%씩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025년 국내와 해외매출은 각각 3조1376억원과 1조926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질병코드 등재를 통해 산업이 위축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인식이 더 깊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만 13~59세 성인 1000명과 게임업계 종사자 1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보고서>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질병코드화로 인해 게임 중독자·정신병 등으로의 낙인찍힐 우려’에 대해 일반인(59.0%)과 업계 종사자(61.3%) 모두 과반 이상 ‘그렇다’고 응답했다. 질병코드화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가 과몰입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 접근에서 벗어나 게임을 ‘사회악’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지난달 25일 ‘2019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현장에서 “게임 과몰입은 학업 스트레스 등 외부 요인에 따른 인지적 문제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청소년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7년 게임 과몰입군으로 판정받았던 학생 66.6%가 일반군으로 이동했다. 전문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대부분 과몰입 현상에서 해소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게임·문화 관련 43개 협·단체들은 KCD의 게임이용 장애 등재에 반대하며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가칭)까지 구성했다. 게임은 물론 콘텐츠, 문화, 영화, 예술, 미디어분야 전문가까지 합세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공대위 관계자는 “게임이 중독 유발원인이 아니라는 논거와 함께 문화콘텐츠 창작의 자유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관련 산업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이용자들이 건전한 게임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1호(2019년 5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