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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호 라인 대표이사. /사진제공=라인플러스
2011년 3월11일 일본 도후쿠 지방에서 발생한 9.0규모의 강진은 많은 사상자와 재산 피해를 남겼다. 당시 갑작스레 발생한 지진 때문에 도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가족의 생사를 묻는 사람이 곳곳에 넘쳐났다.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만든 날이기도 했다. 신중호 라인 대표이사는 후자에 속한다.
◆지진이 가져다준 아이디어
신 대표는 검색전문업체 ‘첫눈’의 핵심개발자였다. 2006년 네이버가 ‘첫눈’을 인수하면서 신 대표 역시 ‘녹색 DNA’를 수혈받았다. 당시 네이버는 일본시장을 적극 공략했지만 야후, 구글 등에 밀리며 실패를 맛본 터라 전문 개발진을 통한 신규서비스 발굴이 급선무였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신 대표를 2008년 당시 NHN재팬으로 보내며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라”고 주문한다.
국내에서 톱 개발자로 명성을 날린 신 대표라 해도 일본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해외 경험이 전혀 없는 엔지니어 출신에 여행으로 도쿄에 갔던 것을 제외하면 관련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집에 돌아오면 사전을 꺼내 첫장부터 외우거나 TV프로그램, 애니메이션을 보며 일본어를 공부하는 등 의사소통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네이버검색과 큐레이션 플랫폼을 선보이며 소기의 성과를 보이는 듯했지만 결과는 참패였고 신 대표는 2011년 일본에서 철수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때 발생한 사건이 3·11 동일본대지진이다.
쓰나미 때문에 통신이 두절되자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대체할 새 연락수단이 필요했다. 신 대표는 이 점에 착안해 신규메신저를 기획한다. 많은 개발자가 필요성을 느꼈던 만큼 현지에서의 흥행 변수는 ‘시간’이었다.
이때 신 대표의 실행력이 또 한번 빛을 발한다. 신 대표는 소셜앱 프로젝트 개발팀은 물론 세이클럽을 만든 개발자까지 영입해 메신저 개발에 나섰다. 이후 3개월 만에 메신저 ‘라인’을 선보인 신 대표의 일화는 현지에서 ‘전설’로 회자된다.
◆발로 뛰는 글로벌리더십
라인은 2011년 일본에서 출시된 후 폭발적인 사용량을 기록했다. 1년도 되지 않아 10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2013년 1월에는 전세계적으로 1억명 이상의 회원이 가입했다. 2016년 기준 글로벌 이용자수 10억명을 넘어선 데 이어 일본에서 1위 메신저로 안착했다. 현재 일본은 물론 대만, 태국에서 국민메신저로 쓰이며 인구 2억6000명이 넘는 인도네시아에서도 톱 메신저로 꼽힌다.
이모티콘과 스티커를 접목시킨 수익화모델을 도입한 라인은 현지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였다. 공식 계정, 디스플레이 광고 등 모바일 플랫폼에 적합한 광고상품 등을 연달아 선보여 기업과 유저를 잇는 신규 비즈니스모델(BM)까지 개발했다.
성공적인 아이디어, 차별화된 BM, 최적화된 플랫폼과 함께 신 대표의 리더십도 라인 흥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신 대표는 메신저 출시 전부터 식당 직원이나 손님에게 직접 라인을 소개하거나 피드백을 받으며 연구를 거듭했다. 사용자의 니즈를 끝까지 파악하려는 열정적 리더의 면모는 이때부터 발휘되고 있었다.
라인이 일본에 출시됐던 시기 지하철 첫칸부터 끝까지 돌아다니며 일본 유저의 모바일 패턴을 관찰하는 등 깊은 집념의 리더십도 선보였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용자 니즈를 찾는 모습은 라인의 조직문화 ‘라인스타일’(LINE STYLE)로 이어졌다.
보스컨 컨설팅 그룹(BCG)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중산층은 2030년까지 64%로 증가할 전망이다. 라인은 동남아시아에서 확고한 위치로 올라선 만큼 글로벌사업을 한층 확장할 계획이다.
◆라인 성공신화, 계속될까
라인 성공신화를 쓴 신 대표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라인 법인 글로벌최고책임자(CGO)로 자리를 옮겼다. ‘브렉시트’(Brexit)를 비롯해 대외적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2016년 7월 정보기술(IT)기업 중 가장 큰 IPO 규모로 도쿄와 뉴욕 동시 상장까지 진행했다.
신 대표는 상장 후에도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통해 핀테크, 인공지능(AI), 검색 등 신규서비스 발굴에 매진했다.
관련 철학은 직원과의 업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해외사업팀 직원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확신을 가진 사업에 대해 전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그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도전을 통한 성장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이를 반영한 것이 최근 전사전략발표회에서 공개된 3개년 계획이다.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스타트업 도전정신을 지속하기 위해 ‘사내독립기업’(CIC)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지난달 라인은 기존 이데자와 다케시와 신 대표가 공존하는 공동대표 체제로 재편했다. 본격적인 신 대표의 경영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올해는 ‘라인페이’ 투자 확대, 블록체인플랫폼 ‘링크체인’ 강화, ‘코노미’ 등 신규서비스 출시 등 다양한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신 대표는 “라인은 아시아의 다윗 같은 존재”라며 “실리콘밸리 골리앗과의 경쟁에서 속도감 있게 유저 니즈를 찾고 디테일에 집중해야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라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일본에 메시징플랫폼을 확산시킨 신 대표의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1972년 출생 ▲NHN 이사 ▲NHN재팬 이사 ▲라인주식회사 이사 ▲라인플러스 대표 ▲라인주식회사 공동대표
☞ 본 기사는 <머니S> 제591호(2019년 5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