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쑹류핑 화웨이 수석법무관이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달 29일 쑹류핑 화웨이 수석법무관이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한국이 또 궁지에 몰렸다. 지난달 24일 미국이 중국기업 화웨이의 제재에 한국정부도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과 관련 논의를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경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2의 사드사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6일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기업으로 등록한 데 이어 27일에는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화웨이 제재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퀄컴, 브로드컴, ARM 등 영미권 국가가 앞장서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서방 언론은 화웨이 제재가 효과를 보인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던 국가에 제재 동참을 요구하면서 굳히기에 돌입했다. 설상가상 지난달 말에는 와이파이연맹, SD메모리카드협회,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도 화웨이의 회원자격을 정지했다. 이들은 모두 미국정부의 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화웨이와 일체 교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연신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달 20일 구글과 MS의 거래 중단에 위청둥 화웨이 컨슈머비즈니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럴 때를 대비해 2012년부터 자체 OS를 준비했다”며 “빠르면 올 가을, 늦으면 내년 봄 화웨이의 자체OS ‘훙멍’이 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표준단체가 화웨이 배제를 선언한 지난달 27일에도 화웨이는 “현재와 이후 상품 및 서비스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과시했다.


'샌드위치' 한국, 화웨이 제재에 제2의 사드 공포



◆희토류·규제… 화웨이 반격카드
중국정부도 화웨이 지원사격에 나섰다. 중국은 지난달 17일 반도체 생산 등에 필요한 자원인 희토류를 무기화하겠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미 무역 협상의 책임자인 류허 부총리는 중국 장시성 간저우의 희토류 생산업체 진리영구자석을 시찰하는 모습을 대내외에 공개했다. 외신들은 “중국이 희토류 카드를 꺼내든 것은 희토류가 미국의 약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전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70.6%를 차지했다. 호주 등 후발주자들의 영향으로 수년 전 96%에 달하던 점유율에서 25% 넘게 줄었지만 미국은 여전히 희토류 사용량의 약 80%를 중국에 의존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이 최근 희토류 생산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희토류의 매장량이 적지 않아 미국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없다”며 중국이 희토류 카드를 섣불리 뽑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어 지난달 24일 중국은 정보기술(IT)인프라 사업자가 부품과 소프트웨어(SW)를 구입할 때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심사할 수 있는 제도인 ‘인터넷안전심사방법’을 도입하면서 공개의견 수렴에 나섰다. 이 제도에서 중국정부가 특정국가를 지목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데 대한 보복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규제 안이 시행되면 중국의 주요 IT인프라 부품 구매권한은 중국정부가 쥐게 된다. 특히 눈에 띄는 항목은 ‘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이나 통제를 받은 경우’, ‘정치·외교·무역 등 비기술적인 요인 때문에 상품과 서비스 공급이 중단될 가능성’이다. 이들 항목은 미국의 제재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한국이 화웨이 제재에 동참할 경우 한국의 IT기업도 중국 정부의 임의 판단에 따라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규제 초안에 IT인프라 사업자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은 국가안보를 근거로 해외 기술 제품의 구매를 차단하는 데 새 규제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미국·중국 의존도 줄여야

세계 각국이 반(反)화웨이 진영에 가담하고 중국정부와 화웨이가 이에 맞서는 양상을 보이면서 한국정부와 기업이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으로서는 중요한 교역국이다. 2017년 사드를 둘러싸고 양국이 신경전을 벌였던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정부는 ‘기업 문제에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며 미국의 요구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섣불리 미국의 요구에 응했다가 기업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27일 기준 국내 업체 가운데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사용 중인 기업은 현대자동차, 한국증권전산, 농협 등이며 LG유플러스는 화웨이의 무선장비를 사용한다. 화웨이 홈페이지에 이름을 올린 한국의 파트너사는 현대오토에버, LG CNS, LG화학, CJ올리브네트웍스, 효성ITX, GS ITM, 쌍용정보기술 등 110여곳에 달해 화웨이 제재에 동참할 경우 이들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반면 화웨이 제재 가담으로 득(得)을 볼 수도 있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글로벌시장점유율 하락분을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한국기업이 확보하면서 기반을 다질 수도 있고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 경쟁에 있어서도 삼성전자가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2017년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다가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을 당했던 사드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미국과 중국에 지나칠 만큼 의존한 결과”라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한국은 지속적으로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교와 통상의 양대 축을 분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남아를 비롯해 이해관계가 비슷한 아시아권 국가와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5호(2019년 6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