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無人)시대-상] ‘사람’이 사라진다

주차장, 카페, 노래방, 편의점, 옷가게에 ‘사람’이 없다. 고객이 없어 파리가 날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업주(사장)가 없다. 일명 ‘무인화 매장’이 늘면서 생긴 풍경이다. 돈은 똑똑한 기계가 한치의 오차 없이 받는다. 오히려 인간의 잦은 실수까지 줄여준다. 그렇게 유통가를 넘어 국내 산업계에는 ‘무인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사람을 쓰지 않는 무인기로 인해 사람이 편해지는 세상. 바야흐로 무인(無人)시대가 찾아왔다.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각계에 스며드는 무인화
“저기서 먼저 주문하고 오시겠어요?”


점포에 사람은 있지만 기계를 먼저 대면하는 시대, 무인화를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곳은 비용을 지불하는 식당이나 상점이다. 가계 입구에 무인주문결제기(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면 굳이 이곳에서 사람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광화문에 위치한 한 국수가게 사장은 올초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이 무인기기의 월 임대료는 20만원. 덕분에 월 100만원이 넘는 아르바이트 비용을 절약했다. 2019년 기준 시간당 최저임금은 8350원이다. 점주가 아르바이트를 매일 8시간 주5일 고용하면 월급은 133만6000원이다.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아르바이트의 특성을 감안해 일 근로시간을 5시간으로 줄여도 주 5일 근무면 83만5000원의 근로수당이 발생한다. 여기에 주휴수당까지 더하면 인건비는 더 올라간다. 업주 입장에서 아르바이트 고용 대비 키오스크 월 대여는 남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고객 인식도 나쁘지 않다. 대면 없이 빠르게 주문처리가 가능해 아직 불평을 제기한 고객이 없다는 게 업주의 설명이다. 고객 정모씨(33)는 “기계(키오스크)를 통해 어떤 메뉴가 있는지, 가격이 얼마인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며 “요새는 오히려 기계 없이 대면으로 결제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고 말했다.


키오스크의 경우 도입 초창기에는 ‘쓰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급률이 낮았지만 대기업들이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계열사인 편의점, 대형마트 등에 도입하며 요즘은 일반식당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거래액이 2500억원, 지난해는 3000억원대로 추산된다. 2006년 600억원대에 불과하던 시장이 10년 만에 4배 넘게 커졌다.


“사람 없어도 사람 많이 와요”… 각계에 스며든 ‘무인화’

무인결제기가 대중화되면서 100% 무인점포도 등장했다. 24시간 영업을 진행하는 편의점의 경우 무인점포를 늘리는 추세다. 현재 CU는 14곳, GS25는 7곳, 세븐일레븐은 12곳, 이마트24는 43곳의 무인편의점을 운영 중이다. 일부 편의점은 주간에는 점원이 있고 야간에 무인편의점이 되는 하이브리드형 매장방식을 적용한다.
100% 무인점포가 늘면서 국내 보안업체들은 얼굴인식 출입 서비스, 무인점포 보안 등이 가능한 지능형 폐쇄회로(CC)TV를 도입하는 등 차별화된 시스템을 도입 중이다. 앞으로 무인 보안수요가 더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관련 업계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도 간단히 커피를 구매할 수 있는 무인형 카페, 판매기에서 반찬을 구매할 수 있는 무인형 반찬가계 등 키오스크를 활용한 다양한 형식의 점포가 등장하고 있다. 홍대의 한 청바지 매장은 출입부터 피팅, 결제까지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된다. 고객은 옷을 입어보고 매장 출입 시 등록한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사람 없는 노래방인 ‘코인노래방’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쉐어형 오피스, 스터디카페 등에도 사람이 없어진지 오래다.

서빙에도 무인화가 스며든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한국피자헛 서울 목동 중앙점에서 레스토랑 서빙 로봇 ‘딜리 플레이트’를 시범 운영했다. 딜리 플레이트는 주문받은 음식을 최대 22㎏까지 싣고 최적의 경로를 찾아 스스로 테이블까지 이동한 뒤 돌아온다. 시범운행을 마친 배달의민족은 올해 건국대학교와 협약을 체결하고 자율주행 로봇이 실생활에 활용되기까지 필요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자율주행 로봇 ‘페니’가 한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진행해 화제가 됐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서빙원이 아닌 로봇이 가져다준 요리를 먹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 없어도 사람 많이 와요”… 각계에 스며든 ‘무인화’

◆무인화가 낳은 사회적 숙제
이처럼 무인화 열풍이 가속화되는 배경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문제가 자리한다. 사람을 고용하는 대신 기계를 써서 인건비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키오스크 구입 시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매달 나가는 아르바이트비를 감안하면 싸다고 느껴질 정도”라며 “최저임금이 앞으로 더 높아질 수 있어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식당이나 상점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무인화 열풍은 최저임금 문제 외에도 업체들이 고객 데이터를 쌓으려는 측면도 있다. 기계를 통한 결제로 고객의 구매패턴을 파악해 이를 마케팅에 다시 활용하는 것이다. 즉 키오스크가 업주의 비용절감을 가능케 했다면 점포를 운영하는 본사 입장에서는 이를 데이터화해 마케팅화하려는 전략이 크다.

정유신 핀테크지원센터장은 “기업은 키오스크에서 확보한 데이터로 소비 패턴을 실시간 분석해 대응하는 식으로 소비자 공략법을 진화시키고 있다”며 “데이터를 통해 더 나은 서비스가 나온다면 소비자들에게도 긍정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인점포에 사람은 없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직원)이 고객을 응대하고 분석하는 셈이다.

물론 무인화로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기기 이용이 능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의 경우 사람 없는 점포가 불편하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50대 선호도는 22%로 20대(42%)에 비해 두배 가까이 낮았다. 응답자 가운데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비율은 20대가 69.6%로 가장 높은 반면 50대는 59.2%로 가장 저조했다.

또한 기존 대형마트나 상점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무인화로 일터를 잃을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대형마트 점포 직원들은 본사가 무인결제이용을 도모하며 직원들을 감축하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에 피할 수 없는 물결처럼 자리 잡은 무인화. 하지만 곳곳에서 터지는 사람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우리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보인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9호(2019년 7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