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국내 건설산업의 주축을 이루던 ‘아파트 개발사업’이 마이너스성장 위기에 몰렸다. 정부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앞으로 수익성 높은 서울이나 지방 대도시의 아파트 공급은 점차 힘들어질 전망이다. 또 주택보급률이 전국뿐만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도 100%에 달하는 가운데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공공임대주택이 늘어나 아파트 개발을 대체할 만한 사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건설업계는 최근 ‘복합화’에 주목한다. 단순 주거기능을 넘어 오피스와 상업, 문화를 아우르는 복합빌딩이 트렌드가 됐다. 아파트단지 안에서 재택근무와 운동, 여가활동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다. 쇼핑·문화 복합시설 스타필드의 잇단 성공으로 고급문화를 소비하는 중산층이나 어린이·반려동물 관련소비도 증가했다. 정해진 영역을 넘나드는 사업진출은 건설업계에 위기이자 기회다. 그러나 아파트 개발이 중심이 돼온 건설업계에 대규모 복합개발의 경험이 부족한 건 아쉬운 점이다.


롯데월드타워. /사진=이미지투데이
롯데월드타워. /사진=이미지투데이

◆위기에 드러난 기술력의 한계
국내 대형건설사들은 최근 몇년 동안 아파트 중심을 벗어나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상가, 호텔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아파트 구매수요가 앞으로 더 이상 늘어나기 힘든 구조라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규모사업이 미래 건설업계를 먹여 살릴 핵심사업은 되기가 힘들다. 수익성이 낮은 데다 적은 일감을 갖고 대형건설사와 중견·중소건설사가 경쟁해야 해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부 대형건설사는 해외수주로 눈을 돌리지만 보다 리스크가 적은 국내 사업을 확장해 산업계 전반의 트렌드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지금까지 해온 아파트 중심의 사업구조를 한꺼번에 바꾸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국내 10위권 대형건설사의 관계자는 “아파트사업의 미래가 없다고 하지만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인 데다 불황에는 새로운 사업의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이 힘들다”면서 “수익성 높은 복합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앞으로 해외 선진도시의 사례 등을 직접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력의 부족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실 아파트 시공기술은 대형 시공사가 아니라 개인 건축업자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손쉬운 수준”이라면서 “국내 시공능력 상위 건설사들을 보면 그동안 사이즈가 커졌음에도 복합빌딩이나 한강대교 등을 짓는 기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건설사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정부 투자사업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 삼성역-봉은사역 영동대로에 들어서는 ‘강남 복합환승센터’(가칭)는 국내 최대 지하도시로 관심이 집중된다. 5개 철도노선과 지하 몰과 터미널 등이 들어서는 복합환승센터사업은 대림산업, 현대건설, SK건설, 대우건설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런 복합환승센터사업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 대도시에서도 추진된다.

문재인정부가 2017년부터 추진한 생활형 사회간접자본(SOC)은 3년 동안 ▲문화·체육시설 14조5000억원 ▲돌봄·공공의료시설 2조9000억원 ▲안전하고 깨끗한 생활환경 조성 12조6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생활형 SOC 복합화사업은 하나의 부지에 연계 시설물을 건립해 어린이·청년·노인 전계층을 아우르는 생활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복합개발이 기존에 없던 방식은 아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지하 몰이 함께 건설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공공청사에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스타필드시티 위례. /사진=뉴스1 DB
스타필드시티 위례. /사진=뉴스1 DB

◆디벨로퍼만이 살아남는 시장
복합개발에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은 오히려 중견건설사에서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금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오너의 의사결정권이 큰 중견건설사가 사업을 직접 시행하면서 시공까지 수행하는 디벨로퍼의 역량을 갖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반도건설은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명동지구에 첨단산업 및 지식기반 산업기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수주, 산업단지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반도건설은 컨소시엄사업인 김해 대동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 수주에도 참여한다. 반도건설 관계자는 “기존 공공택지 주택사업 중심에서 복합개발사업, 토목 SOC, 비주거상품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미건설은 올 3월 물류센터 개발펀드에 2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377억원 규모의 경기 이천시 물류센터 시공권을 따냈다. 수도권 물류센터 개발사업의 첫 투자다.

호반건설은 공공택지 주택사업을 통해 급성장한 후 최근 몇년 동안 레저사업을 확장했다. 호반그룹은 2017년 제주 휴양시설 퍼시픽랜드를 인수하고 지난해 충북 제천의 리솜리조트를 인수했다. 다른 대형건설사들이 관심을 보인 해외 토목·플랜트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리스크를 줄이고 내실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대형건설사 중에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사업 다각화가 가장 활발하다는 평가다. HDC는 지난해 5월 지주회사 전환과 함께 종합 부동산·인프라그룹으로 사업구조를 바꿨다. 테마쇼핑과 공공시설 등이 어우러진 ‘수원 아이파크시티’, 주상복합·오피스·호텔 등이 있는 ‘해운대 아이파크’ 등이 복합개발의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현재 코레일과 임대계약을 맺은 용산역 아이파크몰 앞 광장에는 지하 몰과 공원을 개발해 주변 시설을 연결하는 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의 사업이 추진 중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지난해 전체 매출 대비 국내 주택사업 비중은 83%로 높은 편이다.

HDC 관계자는 “아파트 시공사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주거문화를 포함한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 미래 기업의 모델”이라면서 “융합 비즈니스를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9호(2019년 7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